베른하르트 푀르스터

베른하르트 푀르스터(독일어: Bernhard Förster, 1843년 10월 10일 ~ 1889년 9월 30일)는 독일교사, 식민개척자였다. 엘리자베트 푀르스터 니체남편이며,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매제가 된다.

베른하르트 푀르스터
독일어: Bernhard Förster
학자 정보
출생 1843년 10월 10일
독일의 기 독일 델리히
사망 1889년 9월 30일 (45세)
파라과이의 기 파라과이 산베르나르디노
직업 정치인, high school teacher, 작가
국적 독일의 기 독일
학력 Frederick William University Berlin
괴팅겐 게오르크 아우구스트 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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푀르스터유대인들을 “독일이라는 기생충”으로 여기는 유대인 문제제기주요 극우 반유대주의 논객하나였다.[1] 자기 주장의 지지를 모으기 위해 그는 1881년 막스 리베르만 폰 조넨베르크 등과 함께 독일민족협회(독일어: Deutscher Volksverein 도이처 폴크스페라인[*])를 설립했다.[2]

그는 1883년 파라과이이주했고, 몇 개월에 걸쳐 물색한 끝에 식민지를 세울 을 찾았다. 푀르스터식민지아순시온 북쪽으로 약 300km 떨어진 곳에 위치면적 600km 의 부지였다. 이 식민지누에바게르마니아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푀르스터1885년 3월 독일귀국했고, 같은 해 5월 22일 엘리자베트 니체결혼했다. 푀르스터 부부반유대주의 이념공유하고, 아리아인번영할 수 있는 새로운 "조국(파터란트)"에 살기를 원하는 한 무리의 "개척자"들을 모았다. 그들은 1886년 2월 함부르크에서 출발파라과이로 갔다. 그러나 그들의 야심은 여러 이유로 인해 실패했고, 감당할 수 없는 을 진 푀르스터폭음을 하며 우울증에 빠졌다.[3] 1889년 9월 30일 푀르스터파라과이 산베르나르디노호텔 라고의 자기 방에서 모르핀스트리크닌을 섞은 독극물음독자살했다.

푀르스터산베르나르디노 현지매장되었다.<ref>Kracht, C., & Woodard, D., Five Years (Hanover: Wehrhahn Verlag, 2011).</ref 사후 미망인이 된 엘리자베트남편평판구제목적으로 그를 영웅으로 묘사하는 회고록을 썼고 1891년 출간했다.

각주 편집

  1. Hannu Salmi (2023). “Die Sucht nach dem germanischen Ideal” (독일어). 2023년 1월 9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23년 1월 9일에 확인함.  Also published in Zeitschrift für Geschichtswissenschaft 6/1994, pp. 485-496
  2. Karl Dietrich Bracher, The German Dictatorship, 1970, pp. 59-60
  3. Forgotten Fatherland by Ben MacIntyre ISBN 978-1-4088-38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