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녜스빙엔 전투

비녜스빙엔 전투(노르웨이어: Kampene i Vinjesvingen)는 1940년 5월 노르웨이 전역이 진행되는 기간 노르웨이 텔레마르크주에서 일어난 전투이다. 이 전투는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헤그라 요새 전투와 함께 남부 노르웨이에서 노르웨이군이 마지막으로 저항했던 두 요새 중 하나의 요새였다.

비녜스빙엔 전투
노르웨이 전역의 일부
날짜1940년 5월 3일~5일
장소
결과

독일군의 승리

  • 비녜스빙엔 주둔군이 남부 노르웨이의 전 연합군 병력 후퇴 이후 5월 5일 항복
교전국
노르웨이의 기 노르웨이 나치 독일의 기 나치 독일
지휘관
토르 O. 헤네비그 ?
병력
자원군 300명 ?

전투 이전 편집

토르 O. 헤네비그 소위 의 지휘 하에 있던 이 노르웨이군은 1940년 5월 5일까지 더 우세했던 독일군의 상대로 요새를 지켰다. 헤네비그는 독일군 바로 옆에 있던 창고에서 몰래 덴마크군의 무기, 장비, 연료 등을 비축하고 관리했다. 이 장비들은 텔레마르크 주의 비네베길에서 구입한 것으로 헤네비그가 텔레마르크 보병 연대라고 알려진 부대를 무장했다. 노르웨이군의 계획은 서부로 향하는 텔레마르크주세테스달(Setesdal)로 오는 독일군을 방어하고 서부의 연합군의 지원을 받는 것이었다.

노르웨이군의 장비 편집

노르웨이군은 크라그-예르겐센 볼트 액션 소총에 의지했고, 마드센 경기관총, 브라우닝 M1917 중기관총, 81mm 박격포와 도로와 교량을 파괴하기 위한 지뢰폭발물을 갖추고 있었다.

전투 편집

이 지역에 대한 전체 동원이 시작되고, 약 300명의 병력이 모였지만 이 수는 계속 바뀌었다. 노르웨이군은 주로 소화기급조폭발물로 무장한 매복 작전으로 몇몇 전투를 치렀다. 노르웨이 수비군은 종종 지역의 도로 및 교량을 파괴하여 독일군 전진을 늦추었다.

주요 전투는 5월 3일부터 5일까지 치뤄졌다. 거대한 독일군이 이 지역으로 접근했지만, 독일군의 손실은 상당했다. 노르웨이 남부 전체가 독일군이 점령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온달스네스에서 전투하던 연합군은 서부로 더 이상 전진하지 않았으며, 헤네비그는 항복 협상을 시작했다. 비니에스빙엔 전투는 점령 기간 동안 상당한 상징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나쁜 점령보다 더욱 도덕적 우월심을 주게 되었다. 그러나, 노르웨이의 나머지 지역에서는 이 전투에 대해 알려지지 않았다.

각주 편집

  • Lødrup, Hans P: "Vinjesvingen. Et lite blad av krigens historie i Norge", H. Aschehoug & Co. (W. Nygaard), Oslo 1945 (노르웨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