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드(visard, 또는 vizard)는 검은 우단으로 된 타원형 가면으로, 16세기에 여행하는 여성들이 햇볕에 피부가 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착용하였다.[1] 그 시대 부유한 여성들은 피부를 창백하게 유지하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햇볕에 탄 피부는 야외에서 일을 하는 가난한 사람임을 암시하기 때문이었다. 어떤 종류의 비자드는 고정 장치나 리본 끈으로 고정하는 대신, 착용자가 마스크 안쪽에 달린 구슬을 이 사이에 물고 착용하는 방식이었다.[2]

남편과 함께 말을 타는 16세기 여성이 비자드를 쓰고 있다.
1581년 에이브러험 드 브륜이 새긴 판화의 비자드를 쓴 여성.
1751년 피에트로 롱기의 그림에 등장하는 모레타 무타를 착용한 여성

비자드를 쓰는 관행은 동시대의 논쟁에서 발췌한 다음과 같이 보편적인 인정에 도달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외지에서 말을 탈 때, 우단으로 만든 얼굴 가리개를 가지고 있다 ... 그것을 가지고 얼굴 전체를 가리고, 눈 쪽에 구멍을 내고, 밖을 내다보는데 이전에 그들의 겉모습을 보지 못했던 사람이 그들 중 한 명을 우연히 보게 되면, 괴물이나 악마를 만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안경을 쓰고 있는 눈 쪽의 넓은 두 구멍 외에는 얼굴에서 아무 것도 볼 수 없다.

— 필립 스텁스, 《남용의 해부학》(Anatomy of Abuses, 1583년)

The front of a 16th-century velvet visard. Its reverse.
영국 대번트리에 위치한 16세기 건물 벽 내부에서 발견된 비자드.[3]

베네치아에서는 비자드가 입구멍이 없는 디자인인 모레타로 발전하였고, 이 사이에 구슬이 아닌 단추를 물었다. 이 가면을 쓰면서 말을 하지 못하게 한 것은 의도적인 것으로, 가면을 쓴 여자의 수수께끼를 한층 더 고조시키기 위한 것이었다.[4]

1590년대 스코틀랜드에서 덴마크의 앤은 승마를 할 때 가면을 썼다. 가면은 호박단으로 안감을 댄 검은색 새틴으로 마감되었으며, 고정과 장식을 위한 용도로 피렌체 리본이 달려있었다.[5] 1603년 왕관 연합에서 그는 6월에 잉글랜드로 여행을 갔고, 그가 "이 모든 여행에서 가면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안색에 "어떤 잘못"을 저질렀다고 전해진다.[6] 1620년 변호사이자 궁정인 존 코크는 런던에서 무치 마클에 있는 아내에게 자녀들을 위한 옷들을 보내며 새틴 마스크와 두 개의 녹색 마스크를 함께 보냈다.[7]

각주 편집

  1. Holme (1688).
  2. Elgin (2005).
  3. Portable Antiquities Scheme (2010).
  4. Steward & Knox (1996).
  5. Jemma Field, 'Dressing a Queen: The Wardrobe of Anna of Denmark at the Scottish Court', Court Historian, 24:2 (August 2019), p. 163
  6. Maurice Lee, Dudley Carleton to John Chamberlain, 1603-1624 (Rutgers UP, 1972), pp. 34-5.
  7. HMC 12th report part I, Earl Cowper, Coke (London, 1888), p. 108.

참고 문헌 편집

외부 링크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