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Kanival/솔로몬 해전

솔로몬 해전
제2차 세계 대전의 일부

미국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가 공중에서의 공격으로 인해 기울어져있다. 대공포탄에 직격당한 일본 급강하 폭격기를 볼 수 있다.
날짜1942년 8월 24일 ~ 1942년 8월 25일
장소
산타 이자벨의 북쪽 솔로몬 제도
결과 연합군의 전략/전술적 이점 획득
교전국
미국
호주
일본
지휘관
프랑크 플래쳐 이소로쿠 야마모토
나구모 주이치
병력
항공모함 3척
전함 1척
순양함 4척
구축함 11척
항공기 176대
항공모함 2척
경항공모함 1척
전함 2척
순양함 16척
구축함 25척
비행정 보급선 1척
정찰 보트 4척
수송선 3척
항공기 171대

솔로몬 해전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 전역에서 항공모함간의 3번째 전투이면서 솔로몬 제도 전역에서 과달카날 전투동안 미국해군과 대 일본제국 해군이 벌였던 주요 전투이다. 이 전투는 1942년 8월 24일25일에 벌어졌다. 산호해미드웨이에서 양 측의 함대는 가시거리에 서로를 두었던 적이 없었다. 대신 양측의 모든 공격은 함재기나 지상의 항공기들로 이루어졌다.

몇 차례의 공습이 오고간 후 양측의 함대는 어느 쪽도 명백한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철수했다. 하지만 일본은 상당수의 항공기와 정예 조종사들을 잃은 반면 연합군이 잃은 피해는 일본보다 적었기 때문에 연합군은 일본에 비해 높은 전략/전술적 이점을 얻게 되었다. 게다가 과달카날 섬에 대한 일본군의 증원도 연기되어 결국 수송선 대신 함선으로 병력이 수송되었다. 그로 인해 섬에서 싸울 군사들에게 큰 도움을 주는 야포와 탄약, 전술적인 물품들이 상륙하지 못 하게 되었다. 이는 연합군이 일본군의 반격에 대비할 시간을 더 준 셈이 되었다.

배경 편집

1942년 8월 7일 [미군]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은 솔로몬 제도 남쪽의 과달카날 섬,투라기,플로리다 섬에 상륙했다. 섬에 대한 상륙은 [일본]이 이 섬을 [미국]과 [호주]사이의 보급선을 차단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는 것을 막고, 뉴기니아뉴브리튼 전역의 연합군을 지원하면서 라바울에 위치한 일본군 본거지를 소탕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상륙은 과달카날 섬에서 6개월간 벌어진 긴 과달카날 전투의 시작이었다.

연합군의 상륙은 미국의 세 항공모함 기동함대의 지원을 받았다. 그 세 기동함대는 사라토가호가 속한 11기동함대, 엔터프라이즈호가 속한 16기동함대, 와스프호가 속한 18 기동함대였으며 각각의 항공기대와 전함,순양함구축함을 포함하고 있었다. 세 항공모함 기동함대의 총사령관은 사라토가에 타고 있었던 프랭크 잭 플래쳐 중장이었다. 세 척의 미국 항공모함들은 상륙부대에게 근접항공지원을 상륙부대에 제공하면서 라바울로부터 오는 일본항공기들의 공습을 저지하였다. 하지만 항공모함이 공습에 취약하다는 것과 사보섬 전투에서 연합군의 패배를 고려한 플래쳐는 일본항공기와의 교전에서 너무 많은 전투기들을 잃지 않기 위해 8월 9일에 연료를 이유삼아 항공모함들을 솔로몬 제도와 뉴 해브리드 사이의 안전한 곳으로 철수 시켰다. 이 곳에서 미국항공모함 기동함대는 뉴 칼레도니아와 에스피리투에 위치한 연합군 본거지와의 병참선을 지키는 것과 과달카날 섬투라기의 지상군이 일본의 반격에 맞서 싸우는 것을 지원하는 것과 과달카날로의 보급선들을 호위를 맡는 역할을 책임졌는데, 일정 거리 내로 일본 함선들-특히 항공모함-이 접근할 경우 교전하여 파괴하는 것도 임무였다.

 
미국의 항공모함 와스프(앞)과 사라토가, 엔터프라이즈(뒤)는 1942년 8월 12일에 남태평양과달카날 섬에서 작전을 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