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소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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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소학당구한말 메리 스크랜튼에 의해 설립된 한국의 여성 교육기관으로 매향여자정보고등학교매향중학교의 전신이다. 1902년, 3명의 여학생을 받아 경기도 수원에서 개교하였으며, 이후 1906년 삼일남학당과 분리되어, 삼일여학당이 되었다. 삼일여학당은 1909년 삼일여학교로 이름을 바꿨다.[1]

삼일여학교는 한일병합 이후 일본의 간섭을 피하고 한국의 민족교육을 유지했던 수원 지역에서 중심 교육기관의 역할을 했다. 삼일여학교는 선교 목적으로 설립된 학교였기 때문에 일본의 간섭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삼일여학교를 삼일여학교의 졸업생에는 나혜석, 차인재, 박충애 등이 있다. 이 중 차인재는 삼일여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했으며 구국민단에 참여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독립신문대한민보 등의 독립사상에 관한 신문을 배포하는 활동을 하였다. 박충애는 할머니 김세라와 삼일여학교 교사로 활동했던 김몌례의 영향으로 삼일여학교를 졸업하고 이화학당을 거쳤고, 3·1 운동 당시 평양의 국민회평양부인회에 참여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고 태극기 제작과 독립창가 작성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였다. 이 외 수원에서 3·1 운동에 참여했던 이선경과 구국민단에서 활동했던 임순남최문순은 삼일여학교의 졸업생들이었고, 구국민단의 회의는 삼일여학교에서 이뤄지기도 했다.[2] 1928년3월22일에 삼일여자보통학교(당시 교명)를 졸업한 최순애는 1925년 재학시에 오빠생각 동요를 어린이지에 발표하여 국민동요로 널리불리는 노래가 되었다.[3]

각주 편집

  1. 손민호 (2010). “매향여자정보고등학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20년 7월 29일에 확인함. 
  2. 조명자 (2019년 3월 28일). “삼일여학교와 여성 독립운동가”. 《경기일보. 2020년 7월 29일에 확인함. 
  3. 표창진 (2014년 8월 8일). “최순애의 학창시절과 국민동요"오빠생각”. 고향의봄 기념사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