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위만조선)

(參, ? ~ 기원전 99년)은 위만조선의 관료이다. 관직인 이계상(尼谿相)을 붙여 이계상 삼으로 부르기도 한다.[1]


고조선의 이계상
군주 우거왕

신상정보
출생일 미상
사망일 기원전 99년
성별 남성

개요 편집

전한 무제가 위만조선을 징벌하자 (最)를 시켜 기원전 108년 6월 우거왕을 죽이고 전한에 투항하였고,[2] 홰청(澅淸侯)에 봉해졌다. 당시에 우거왕은 삼한과 한나라의 교역을 가로막고 이권을 챙기고 있었다.[3] 아마도 삼(參)은 이러한 우거왕의 정책에 반대하였던 세력 가운데 하나였다고 비정된다. 천한 2년(기원전 99년), 달아난 조선인 포로를 숨긴 죄로 하옥되어 병사하였다.

같이 보기 편집

각주 편집

  1. 김용선(金龍善).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의 정보, 삼(參)”. 한국학 중앙연구원. 2016년 3월 1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2년 3월 18일에 확인함. 
  2. 사마천 “조선 상(朝鮮相) 노인(路人)·상 한음(相韓陰)·니계 상 참(尼谿相參)·장군 왕겹(王唊)이 서로 참여하여 일을 꾸며 이르기를, “당초에 누선에게 항복하고자 하였으나, 누선은 지금 잡혀있고, 홀로 좌장군이 아우르고 거느리니, 전쟁은 점차 급해지고 있고, 더불어 싸우지 못할까 두려운데, 왕은 또한 항복을 들어주지 않고 있다. ”하였다. [...] 원봉(元封) 3년(기원전 108년) 여름, 니계 상 참은 아랫사람을 시켜 왕 우거를 죽이고 와서 항복하였다.”/“朝鮮相路人、相韓陰、尼谿相參、將軍王唊相與謀曰:「始欲降樓船,樓船今執,獨左將軍并將,戰益急,恐不能與,(戰)王又不肯降。」[...]元封三年夏,尼谿相參乃使人殺朝鮮王右渠來降。”
  3. 사마천 “아들을 거쳐 손자 우거(右渠)에 이르러, 한(漢)나라의 망명자를 점점 더 많이 꾀어들였고, 아직 들어가 천자를 뵙지도 않았다. 진번(真番) 옆의 여러 나라들이 글을 올려 천자를 뵙고자 하였으나, 또한, 우거가 가로막아 통하지 못하였다. ”/“傳子至孫右渠,所誘漢亡人滋多,又未嘗入見;真番旁眾國欲上書見天子,又擁閼不通。”

참고 문헌 편집

  • 사마천 (기원전1~2세기). 〈권제115 조선열전(朝鮮列傳) / (漢文本)〉. 《사기》. 
  • 한서 (漢書)
  • 한국사강좌(韓國史講座) Ⅰ―古代篇―(李基白‧李基東, 一潮閣, 1982)
  • 위씨조선흥망고 (衛氏朝鮮興亡考) (李丙燾, 서울大學校論文集 人文社會科學 4, 1956; 韓國古代史硏究, 博英社, 1976)
  • 위만조선관계 중국측사료에 대한 재검토 (衛滿朝鮮關係 中國側史料에 대한 再檢討) (金翰奎, 釜山女子大學論文集 8, 1980)
  • 고대의 서북조선과 위만조선국의 정치사회적 성격 (古代の西北朝鮮と衛氏朝鮮國の政治‧社會的性格) (三上次男, 中國古代史の諸問題, 1954;古代東北アジア史硏究, 19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