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릭 클레망
알베릭 클레망(Albéric Clément, 1165년경 ~ 1191년 7월 3일)은 프랑스의 군인이다. 1190년 존엄왕 필리프에 의해 최초의 프랑스 원수로 임명되었다.[1]
생애
편집알베릭은 1160년대 중엽 로베르 3세 클레망(Robert III Clément)과 메즈의 에르장드(Hersende de Mez)의 아들로 태어났다.[2] 1182년 부친의 뒤를 이어 메즈 영주가 되었다. 1190년 존엄왕 필리프에 의해 프랑스 원수로 임명되었으며, 국왕을 수행하여 제 3차 십자군 원정에 참전했다.
알베릭은 1191년 7월 3일, 아크레 공방전에서 성벽을 공격하던 중 전사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최후에 관한 이야기는 여러 가지가 있다. 동시대의 시인 노르망디의 앙브루아즈(Ambroise de Normandy)는 원수가 직접 돌격을 진두지휘하다 전사했다고 말한다. 또는 그가 '오늘 아크레에 입성하던가, 아니면 죽겠다'고 맹세한 뒤 저주받은 탑(la tour Maudite)[3]을 향해 갔다고도 한다.[4][5] 몇몇 기록들은 알베릭이 한 손에 국왕의 깃발을 든 채 부하들과 함께 돌격하여 사다리를 놓고 성벽을 오르던 도중에 적군이 던지는 갈고리에 채였고, 부하들은 위에서 떨어지는 돌 때문에 그를 따라 올라가지 못하여 그가 고립되었다고 전한다.[6] 다른 기록에서는 뒤따라오던 부하들의 무게 때문에 사다리가 중간에 부러져서 그가 혼자 성벽 위에 남게 되었다고 한다. 알베릭이 전사한 후 한 적병이 그의 갑옷을 벗겨 입고 성벽 위를 행진하자, 리처드 1세가 그를 쏘아 거꾸러뜨렸다는 이야기도 있다.[7]
알베릭의 유해는 수프(Souppes)의 세르캉소 수도원(Abbaye de Cercanceaux)에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에게는 두 명의 형제가 있었다. 앙리 1세 클레망은 1204년 프랑스 원수가 되었으며, 위그 클레망(Hugues Clément)은 성직자였다.
프랑스 원수의 직무
편집이 시기의 프랑스 원수 칭호는 대규모 병력을 지휘하는 장군에게 부여된 것이 아니며, 당사자에게 그런 권한을 주는 것도 아니었다. 알베릭 역시 공식적으로 '군대'를 지휘한 적은 없었다. 사실 이 시기 원수의 일은 국왕의 마굿간과 말을 관리하는 것에 가까웠다.[8]
- ↑ BECK, Shari (2011). 《A Portrait In Black And White: Diane De Poitiers In Her Own Words》. Indiana Univ.Press. 89쪽. ISBN 9781462029815.
- ↑ BALDWIN, John (1986). 《The Government of Philip Augustus: Foundations of French Royal Power in the Middle Ages》. Univ. of California Press. 34-35쪽. ISBN 0520073916.
- ↑ 아크레 요새의 주탑 중 하나.
- ↑ AILES Marianne, BARBER Malcolm (2003). 《The History of the Holy War: Ambroise's Estoire de la Guerre Sainte》. Boydell & Brewer. 100쪽. ISBN 9781843830016.
- ↑ PAYNE, Robert (2000). 《The Dream and the Tomb: A History of the Crusades》. Cooper Square Press. 234-235쪽. ISBN 9780812829457.
- ↑ 위의 책, 234-235쪽
- ↑ AILES and BARBER(2003), p.100.
- ↑ FLEMING, Georges (1869). 《Horse-Shoes and Horse-Shoeing: their origin, history, uses and abuses》. 375-37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