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망(劉望, ? ~ 23년), 혹 유성(劉聖)[1]신나라 말기의 군웅이다. 전한의 옛 종무(鍾武侯)[2]로, 황제를 자칭했으나 한 경시제의 공격으로 패망했다.

행적 편집

녹림군·적미군 등 농민 반란이 잇따르고 곤양 전투에서 신나라 주력 대군이 녹림군에게 대패하는 등[3][4] 신나라 말기의 혼란을 틈타, 23년, 여남군에서 거병해 이 군을 점유했다.[3] 곤양 전투에서 패배한 신나라의 납언장군 장우질종장군 진무(陳茂)가 패군 초현으로 가서 한나라의 장수라 일컬으며 한나라를 부흥시키자고 주장하다가,[4] 유망에게 항복했다.[3][4] 당시 이미 2월에 녹림군에서 추대한 한나라의 황제 경시제가 있었으나, 경시제에게 속하지 않아 8월에 스스로 천자가 되었고, 장우를 대사마에, 진무를 승상에 임명했다.[3][4] 경시제가 대사도 유사를 보내 공격해 오자 이를 무찔렀다.[3] 그러나 10월 경시제가 유사 대신 보낸 분위대장군(奮威大將軍) 유신에게 격파돼, 장우·진무와 함께 죽었다.[3][4][5]

각주 편집

  1. 《후한서》에서는 유망, 《한서》에서는 유성이라 한다.
  2. 한서 왕자후표의 역대 종무후 명단에는 종무절후 유칙을 끝으로 기록이 없다. 호삼성은 유망을 유칙의 아들로 추정하였다.
  3. 범엽: 《후한서》 권11 유현유분자열전 중 유현
  4. 반고: 《한서》 권99하 왕망전제69하
  5. 한서에서는 유성에 관계된 기사가 모두 10월에 있고, 10여일 후에 이들이 졌다고 전하는데, 후한서에 따르면 유망은 장우와 진무의 항복을 받은 후 8월에 천자가 되고, 유사를 무찌르고, 10월에 패망한다.
선대
(아버지?) 종무절후 유칙
전한의 종무후
? - 8년
후대
(전한 멸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