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효중(尹孝重, 일본식 이름: 伊東孝重, 1917년 ~ 1967년)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조각가이다. 호는 ‘불재(弗齋)’이다.

윤효중
신상정보
출생 경기도 장단군
국적 대한민국
분야 조각
주요 작품
영향

생애 편집

윤호중은 경기도 장단군 출신으로, 배재고등보통학교에서 미술 교사였던 조각가 김복진에게 사사했다. 이후 일본에 유학하여 목조(木彫)를 전공하였고, 1941년 김복진의 출신교인 도쿄 미술학교를 졸업하였다.

1940년부터 문전(文展)·선전(鮮展) 에 출품하기 시작하여 총독상·창덕궁상을 수상했고, 1942년 일본조각가연맹(日本彫刻家聯盟) 회원이 되었다.[1]

1948년에서 1958년에는 홍익대학교 미술학부의 창설에 참가하여 동 조각과장, 미술학부장 등을 역임했다. 1951년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린 유네스코 국제예술가회의에 한국대표로 참가, 1952년 스위스 만국박람회, 동 53년 영국 국제조각대회에 출품했다. 1953년 이래 국전 심사위원으로 활약하였다. 1955년에는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 되었고, 대한미술협회 부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57년에는 한국미술연구소의 개설을 위해 노력하였다.[1]

작품 편집

주요 기념동상작으로 〈이충무공동상(鎭海)〉, 〈민충정공상〉, 〈이승만박사상〉이 있으며, 작품으로 〈물동이를 인 여인〉, 〈현명(弦鳴)〉, 〈생〉, 〈희망〉, 〈석(昔)〉, 〈해변가의 도시 풍경〉, 〈십자가〉 등이 있다.[1]

일제 강점기에는 〈현명(弦鳴)〉(1942), 〈물동이를 인 여인〉(1944) 등 토속적인 소재의 인물 조각이 대표작이다. 광복 후에는 제1공화국 대통령 이승만 동상을 비롯하여 제작하는 등 기념탑 등 대형 조각 작품 제작에 자주 참여했다. 윤효중이 이승만의 80회 생일을 기념해 제작한 이승만 동상은 4·19 혁명 때 분노한 시위대에 의해 파괴된 바 있다.[2]

친일 논란 관련 편집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4년 결전미술전에 친일 조소 작품을 출품한 경력이 있다.[3] 이 외에도 1942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전쟁 승리를 기원하는 일본의 전통 풍습인 천인침을 소재로 한 〈천인침(千人針)〉을 출품해 특선을 차지하는 등 친일 작품을 제작했고, 대화숙에서 미술을 지도한 경력 등 친일 행적이 비교적 뚜렷한 편이다. 이로 인해 광복 직후 조선미술건설본부가 결성될 때 배제되기도 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미술 분야에 선정되었다.

각주 편집

  1. 한국미술/한국미술의 흐름/한국 현대미술/현대의 미술가/윤효중, 《글로벌 세계 대백과》
  2. 이순우 (2004년 2월 1일). “남산의 이승만 동상, 아직 남아있다 - 4·19때 넘어진 동상 두 구의 행방, 그리고 그 후”. 오마이뉴스. 2008년 5월 31일에 확인함. 
  3. 길윤형 (2004년 10월 1일). “운보 김기창 화폭 속 친일”. 한겨레. 2008년 5월 31일에 확인함.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참고자료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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