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원 (1763년)

이유원(李有源, 1763년 4월 14일 - 1835년 2월 16일)은 조선 후기의 학자, 효자로 서재필, 서재창의 외증조부이다. 효행으로 여러번 천거되기도 하였으며, 사후 아들 이기두의 출세로 가선대부 이조참판에 증직되었다. 본관은 성주(星州)이고, 자(字)는 덕윤(德潤)이며 호(號)는 눌와(訥窩)이다.

생애 편집

그는 효성(孝誠)이 지극(至極)하여 겨울에 어머니가 잉어를 먹고 싶다고 하자 추운 겨울에 얼음 속에서 잉어를 얻어오기도 했고, 눈 속에서 과채(瓜菜)를 구하여 부모를 봉양하였다. 보성의 사림이 여러 번 그 효행(孝行)을 조정에 보고하고 천거하였다.

세번 결혼하였는데 첫 부인 통덕랑(通德郞) 나상좌(羅尙佐)의 딸 금성나씨(錦城羅氏)에게는 자녀가 없고, 재취 부인 송창여(宋昌呂)의 딸 여산송씨(礪山宋氏)에게서 2남 2녀를 두었는데 장남이 이기대이최선의 장인이며 이승학의 외할아버지이다. 또한 독립운동가 겸 정치인 서재필갑신정변의 혁명가 서재창의 외할아버지이다. 세 번째 부인 전의이씨(全義李氏)에게서 3남 2녀를 얻었는데 이 중 막내아들 이기두가 훗날 노인직으로 동지중추부사에 올랐다.

동복군 문덕면(현 보성군 문덕면)에 정착하였으며 1835년 2월 16일에 사망하였다. 당시 향년 73세였다. 후에 아들 이기두가 노인직으로 동지중추부사에 올라 1888년(고종 25년) 가선대부(嘉善大夫) 이조참판(吏曹參判) 겸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에 추증되었다.

전라남도 보성군 문덕면 용암리 산42번지 장동마을 후록(後麓) 손좌(巽坐)에 안장되었다. 증손자 이교문(李敎文)이 행록(行錄)을 짓고, 그의 손녀사위 이최선과 외증손 이승학의 연고로 면암 최익현(勉菴 崔益鉉)이 특별히 발문(拔文)을 썼다.

가족 관계 편집

  • 할아버지 : 이규명(李奎明) - 한성부에서 보성군으로 이주하였다.
  • 할머니 : 파평윤씨(坡平尹氏)
  • 할머니 : 해평윤씨(海平尹氏)
    • 삼촌 : 정진(定鎭)
    • 삼촌 : 관진(觀鎭)
  • 아버지 : 이국진(李國鎭, 1738년 8월 16일 - 1781년 5월 27일, 호는 도헌)
  • 어머니 : 하동정씨(河東鄭氏, 1735년 - 1787년 5월 8일)
  • 부인 : 금성나씨(錦城羅氏 ? - 1788년 6월 13일)
  • 부인 : 여산송씨(礪山宋氏, ? - 1797년 6월 20일)
    • 아들 : 이기대(李箕大)
    • 아들 : 이기룡(李箕龍)
    • 아들 : 이기백(李箕柏)
    • 딸 : 이씨
    • 딸 : 이씨
  • 부인 : 전의이씨(全義李氏, 1779년 - 1839년 11월 8일)
    • 아들 : 이기덕(李箕德)
    • 아들 : 이기두(李箕斗)
    • 딸 : 이씨
    • 딸 : 이씨

같이 보기 편집

외부 링크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