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명 초상(趙文命肖像)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에 있는 조선시대의 초상화이다. 2017년 12월 7일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제419호로 지정되었다.

조문명 초상
(趙文命肖像)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종목유형문화재 제419호
(2017년 12월 7일 지정)
수량1점
시대조선시대
관리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주소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이화여대길 52 (대현동, 이화여자대학교)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개요 편집

조문명(趙文命, 1680-1732)의 본관은 풍양, 호는 학암(鶴巖)이다. 1728년 이인좌, 정희량 등이 주도하여 발생한 무신란의 진압에 공을 세워 분무공신(奮武功臣) 2등에 녹훈되어 풍릉군(豐陵君)에 책봉되고 병조판서가 되었다. 이후 대제학 이조판서를 거쳐 우의정, 좌의정에까지 이르렀다.

이 작품은 오사모에 단령을 입고 두 손을 소매 속에 모아 잡은 채 교의에 앉아 있는 전신좌상이다. 배경은 생략되었으며 바닥에는 아무것도 깔려있지 않다. 교의에는 표피가 덮여 있고, 두 발은 족좌 위에 놓았다. 쌍학흉배와 삽금대를 착용하고 있다. 등신대의 인물을 실감나게 표현했으며 전체적으로 매우 정교하게 묘사했다.

화면 우측 상단에 “英祖朝 左議政豐陵府院君鶴巖趙公眞 諱文命字叔章 諡文忠”을 중간에 “兵曹判書時作”이라 적었는데, 후대에 어설픈 솜씨로 쓴 것이다. 상축 뒷면에는 묵서로 “諡文忠”이라고 단정하게 적혀있다. 얼굴의 묘사로 미루어 볼 때 분무공신으로 녹훈되었을 때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유소는 망실되어 붉은 색 끈만 남아 있다. 장황은 전체적으로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족자가 다소 낡았지만 화면의 상태는 양호하다. 다른 분무공신의 경우 반신상 및 초상화를 보관했던 주칠 목함이 함께 전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이 작품은 초상화 1축만 소장되어 있다.

족자로 꾸민 초상화의 네 변에는 미색 바탕에 당초화문이 직조된 비단을 붙였고, 상·하회장에는 연화당초문이 들어간 남색비단으로 장황하였다. 현재의 장황은 1728년 경 분무공신상을 제작할 당시에 만든 것으로 추측된다. 보물 제1927호로 지정된 <박동형 초상>의 장황과 비교해 보면 <조문명 초상>의 네 변과 상·하회장의 문양, 색감, 비례 등 유사점이 많다. 약 290년 전 당시에 만든 표장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사례이며, 이는 <조문명 초상>을 분무공신상으로 추정하는 근거가 될 것이다. 다른 분무공신인 김중만(金重萬) 초상(보물 제715호), 오명항(吳命恒) 초상(보물 제1177호), 박문수(朴文秀) 초상(보물 제 1189호), 박동형(朴東亨) 초상(보물 제1927호) 등과 인물표현의 도상과 양식, 장황의 방식에 있어서의 모두 일치한다. 조선시대 마지막 공신인 분무공신으로 녹훈될 때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만 오명항 초상의 사례에서 보듯이 정본을 그린 후 바로 이모본을 제작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조선시대 초상화의 높은 수준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18세기 전반기의 작품이다.

각주 편집


참고 문헌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