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함조(晉含祚, ?~1030년 8월 28일(음력 7월 27일)[1])는 고려 전기의 문신·정치인이다. 본관은 남원이다.[2]

진함조
晉含祚
고려상서좌복야
국왕 고려 현종

신상정보
출생일 미상
출생지 미상
사망일 미상
사망지 미상
국적 고려
성별 남성
본관 남원

생애 편집

1009년(목종 12년)에 김치양(金致陽)이 난을 일으켜 천추전(千秋殿)에 불이 났을 때 진함조는 태복(太卜)으로서 태의(太醫) 기정업(奇貞業), 태사(太史) 반희악(潘希渥), 재신(宰臣)인 참지정사(叅知政事) 유진(劉瑨), 중추원사(中樞院使) 최항(崔沆), 급사중(給事中) 채충순(蔡忠順) 등과 함께 은대(銀臺)에서 직숙(直宿)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3]

1018년(현종 9년)에 호부상서(戶部尙書)로 임명되었다.[4]

1020년(현종 11년)에 우복야 겸 도정사(右僕射 兼 都正使)가 되었다.[5]

1023년(현종 14년)에 그는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에 올랐고, 주덕명(朱德明)은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로 임명되었다.[6]

1030년(현종 21년)에 죽었는데, 《고려사》에서는 그를 매우 낮게 평가하고 있다.[7]

각주 편집

  1. 《고려사》 권5, 〈세가〉5, 현종 21년(1030년) 7월 27일(무인)
  2. 기우만, 《송사집》 권32, 成均博士晉公墓碣銘, “晉氏南原人。高麗僕射含祚其始祖。”
  3. 《고려사》 권3, 〈세가〉3, 목종 12년(1009년) 1월 16일(임신)
  4. 《고려사》 권4, 〈세가〉4, 현종 9년(1018년) 8월 3일(임진)
  5. 《고려사》 권4, 〈세가〉4, 현종 11년(1020년) 1월 11일(계해)
  6. 《고려사》 권5, 〈세가〉5, 현종 14년(1023년) 1월 17일(임오)
  7. 해당 원문은 다음과 같다. "含祚治術數, 每遇國家有事, 輒質以圖讖, 遂至大用, 時議輕之."(《고려사》 권5, 〈세가〉5, 현종 21년(1030년) 7월 27일(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