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직(崔炳直 1864년 ~ 1942년, 1894년 식년시 4월 15일 試券, 5월 紅牌 記錄), 이명(異名) 崔秉直(국조방목 國朝榜目 卷之十三 記錄) 조선 말기의 문신이다. 자는 원중(元中) 호는 성전(星田)

가문과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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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항의 16대손. 그의 고조부는 1726년(영조 2)에 남원 이백면 옹금마을 삭녕 최씨 집안에서 그 재실에 설립한 고암재(서당)의 훈장을 지낸 진사 최상익(崔祥翼)이다. 증조부는 관효(觀孝), 조부는 우순(遇順), 부친은 의금부도사를 지낸 선구(璇九)이다. 외조부는 전의이씨(全義李氏) 기만(丌萬)이다. 남원 이백면 출신

생애와 주요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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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직은 광서 20년(光緖二十年, 31세) 고종갑오년(高宗甲午年) 창경궁(昌慶宮) 춘당대(春塘臺)에서 치뤄진 조선의 마지막 식년시에서 문과급제(甲科 2位)하였다(1894년 4월 15일). 이후 한림(翰林)으로 봉상시직장(奉常寺直長)을 거처 융희원년(隆熙元年) 비서감랑(祕書監郞)에 임명되었으며(1907년 9월 19일),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올라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시강(侍講)을 지냈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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