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원년(기원전 179년), 충달의 뒤를 이어 곡성후(曲成侯)에 봉해졌다. 죄를 지어 작위가 박탈되었다가 회복되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였다.
건원 원년(기원전 140년)에 죽으니 시호를 공(恭)이라 하였고,[2] 아들 충황유가 작위를 이었다.
- ↑ 한서에서는 충첩, 사기에서는 고첩이라고 한다.
- ↑ 시호는 사기에만 기록되어 있다.
전임 아버지 곡성어후 충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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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의 곡성후 기원전 179년 ~ 기원전 172년 기원전 166년 ~ 기원전 162년 기원전 145년 ~ 기원전 1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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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임 아들 충황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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