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산 레흐티』(핀란드어: Kansan Lehti→민중신문)는 1898년에서 1991년까지 탐페레에서 발행된 핀란드사회민주주의 언론이다.[1]:264–266

1944년 2월 27일 창간 45주년 기념식의 『칸산 레흐티』 편집진.

『칸산 레흐티』는 핀란드의 세 번째 사회주의 이념언론이었다.[1]:264–266탐페렌 사노마트』의 탐페레 노동자협회 "꼭지"가 그 전신이다.[2]:63, 88 정치적으로 『칸산 레흐티』는 『튀외미에스』 노선을 따랐고, 1904년 이후로는 호헌파와 사이가 멀어지며 노동운동계에서 지도적인 언론이 된다.[1]:264–266

핀란드 내전 직전까지 『칸산 레흐티』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언론일 뿐 아니라 사업적으로도 성공했다. 탐페레 전투 이후 『칸산 레흐티』는 발행이 중단되었고, 그 인쇄소 등 설비는 몰수되어 우파 신문인 『탐페렌 사노마트』에게 주어졌다. 그러다 1919년 초부터 『칸산 사나』(핀란드어: Kansan Sana→민중의 소리)라는 이름으로 재발간, 이듬해 제호가 『칸산 레흐티』로 복귀하며 부활했다. 내전 이후 핀란드 노동운동계가 분열했을 때 『칸산 레흐티』는 중도 경향을 표방하면서 급진좌파와 다투었다.[1]:264–266

1920년대 들어 『칸산 레흐티』는 사회주의 선전지의 성향이 옅어지고 좀더 언론의 역할에 충실해지며 문화 관련 기사도 많이 싣게 되었다. 『칸산 레흐티』는 발매부수로 우익 언론들과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사회주의 언론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재정상황이 악화되었으나 1950년대 후반 이후 상황이 호전되었다. 1959년 이위배스퀼래 지역 사회주의 신문 『튀왼 보이마』가 폐간되면서 1960년대부터 『칸산 레흐티』가 중부지역까지 포괄하게 되었다.[1]:264–266

1960년대 말 재정난으로 판매부수가 줄었다.[1]:264–266 1981년 이위배스퀼래에 『주간 중앙수오미』가 창간되면서 『칸산 레흐티』는 중부지역에서 철수, 탐페레 지역언론의 역할로 돌아갔다. 1991년 결국 재정난을 못 이기고 폐간, 사민당 헬싱키 중앙당의 당보인 『데마리』에 흡수되었다.[3]:150-157

『칸산 레흐티』는 창간 초기에는 주 3회, 1906년-1918년, 1919년-1957년, 1969년-1972년에는 주6회, 1919년 초에는 주 4회, 1958년-1968년에는 주 7회, 1972년부터는 주 5회 발행되었다. 발행 부수는 1906년에 12,500 부, 917년에 17,500 부였고 최대 부수는 1977년의 20,600 부였다. 1960년대에 중부지역으로 진출했을 때 부수가 6,000 부 늘었다가 1980년대에 철수하면서 9,000 부 줄어들었다.[1]:264–266 폐간 직전의 발행부수는 8,600 부 정도였다.[3]:156

역대 주필 편집

 
1944년 당시 주필 얄마리 레이노.

각주 편집

  1. Suomen lehdistön historia 5: Hakuteos Aamulehti – Kotka Nyheter. Kuopio: Kustannuskiila, 1988. ISBN 951-657-239-1.
  2. Pietilä, Jyrki: Aatetaistoa ja jymyuutisia: Tamperelaisia sanomalehti-ilmiöitä 1800-luvulta vuosituhannen vaihteeseen. Mediapinta, 2010. ISBN 978-952-235-129-6.
  3. Hämäläinen, Reijo: Työväenlehden arktinen taival. Vantaa: Kellastupa, 2015. ISBN 978-952-5787-18-4. Teoksen verkkovers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