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서울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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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1945는 남침 유도설을 긍정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가? 편집

  1. 백상예술대상 수상한 게 어쨌다는 건지요? 기존 편집판에도 수상 틀이 있습니다. 그리고 식권 등 논란을 낳았던 주몽도 백상예술대상에서 대상 수상했습니다.
  2. 해당 문서에 출처 링크를 참고하세요.

그리고 토론 의견을 남길 때 위키백과:토론에서 지켜야 할 점 참고하세요.--112.162.125.125 (토론) 2013년 1월 5일 (토) 20:30 (KST)답변

  1. 토론에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지우지 말라도 버젓이 써져 있네요. 왜 남의 의견을 함부로 지우시는건지 모르겠습니다.
  2. 님이 위 작품의 작품성을 주관적으로 폄하하는 것에 맞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사례를 제시한 것일 뿐입니다. 지지부진한 러브스토리라는 근거없는 문장은 삽입하시면서 수상으로 증명된 작품성을 부정하시면 곤란하죠.
  3. 남침유도설의 당위를 묻는게 아니라 서울1945가 남침유도설을 긍정했다는 근거를 요하는 겁니다. 링크 어디에서도 서울1945가 남침유도설을 긍정했다는 내용은 찾지 못하겠습니다. --윈리 (토론) 2013년 1월 6일 (일) 00:24 (KST)답변
장난성 의견처럼 남겨놓으니깐 되돌린것이구요. 수상 틀은 기존 편집판에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님이 처음엔 주관적 편집이라고 삭제했을때 러시아 문서 출처 추가 보완한거 안보이시나요?--112.162.125.125 (토론) 2013년 1월 6일 (일) 08:16 (KST)답변
  1. 님이 제시하신 링크는 남침유도설 논란에 대한 근거지, 서울1945가 남침유도설을 긍정했다는 근거가 아닙니다. 서울1945가 남침유도설을 긍정했다는 근거를 제시바랍니다.
  2. 러브라인 등 스토리가 지지부진하다는 평가는 주관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백상예술대상은 작품성을 인정받은 명확한 사례이구요. 어째서 님의 주관적인 평가가 공인된 작품성을 폄훼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윈리 (토론) 2013년 1월 6일 (일) 13:00 (KST)답변

반복적으로 말하지마세요. "한국전쟁을 러시아 문서에서도 치밀한 계획임을[3] 밝혀지면서 설득력을 잃은 남침유도설 등에 음모론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드라마 속 배경연도인 1950년 김일성이 박헌영의 빨치산 봉기를 긍정적으로 보는 것으로 묘사하지만 소련의 외교문서인 1949년 9월 14일 툰킨 소련공사의 보고전문에 의하면 김일성은 박헌영의 남로당 빨치산들로부터 원조를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수상틀은 기존 편집판에 있기때문에 토론에 해당사항이 아니구요.--112.162.125.125 (토론) 2013년 1월 6일 (일) 14:41 (KST)답변

drama scope / 노정태 | 드라마틱 2006년 9월호 - 모아진/ 강간으로 맺어진 사랑? <서울 1945> 남은 것은 여필종부의 교훈 뿐 2006년 10월 1일 오마이뉴스 출처 확인바랍니다.--112.162.125.125 (토론) 2013년 1월 6일 (일) 14:58 (KST)답변

  1. 님이 핵심을 피하시니 반복적으로 말씀드리는 수밖에요. 저는 서울1945가 남침유도설을 긍정한 근거를 제시해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서울1945가 남침유도설을 긍정했다는 근거가 뭡니까? 러시아 문서에 서울1945가 남침유도설을 긍정했다고 나왔나요
  2. 지지부진한 러브스토리란 건 아무 근거 없는 주관적 평가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강간씬 등으로 전파낭비라는 근거로 링크하신 오마이뉴스 기사 역시 댓글을 보니 반대의견이 압도적이더군요. 위 기사는 팩트를 다룬 기사가 아닌 그저 개인의 주관적인 사설에 불과합니다. '작품에 대한 평'인 항목이므로 공인된 근거를 가져다가 평가를 작성했는데 왜 자꾸 지우시고 주관적인 평가를 쓰시는지요?--윈리 (토론) 2013년 1월 6일 (일) 15:17 (KST)답변
1."한국전쟁을 러시아 문서에서도 치밀한 계획임을[3] 밝혀지면서 설득력을 잃은 남침유도설 등에 음모론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드라마 속 배경연도인 1950년 김일성이 박헌영의 빨치산 봉기를 긍정적으로 보는 것으로 묘사하지만 소련의 외교문서인 1949년 9월 14일 툰킨 소련공사의 보고전문에 의하면 김일성은 박헌영의 남로당 빨치산들로부터 원조를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2.drama scope / 노정태 | 드라마틱 2006년 9월호 - 모아진/ 강간으로 맺어진 사랑? <서울 1945> 남은 것은 여필종부의 교훈 뿐 2006년 10월 1일 오마이뉴스--Ki331 (토론) 2013년 1월 6일 (일) 15:50 (KST)답변
이링크는 그냥 시상식 기사죠.

최신 | 이전) 2012년 12월 29일 (토) 16:29‎ 윈리(토론 | 기여)‎ . . (9,888 바이트) (-187)‎ . .(→‎허구: 사실과 다른 내용 삭제) (편집 취소)

  1. (최신 | 이전) 2012년 12월 29일 (토) 16:27‎ 윈리(토론 | 기여)‎ . . (10,075 바이트) (-1,202)‎ . .(→‎논란: 본문과 관계없는 내용 삭제) (편집 취소)
  2. (최신 | 이전) 2012년 12월 29일 (토) 16:25‎ 윈리(토론 | 기여)‎ . . (11,277 바이트) (+213)‎ . . (편집 취소)
  3. (최신 | 이전) 2012년 12월 29일 (토) 16:21‎ 윈리(토론 | 기여)‎ . . (11,064 바이트) (-114)‎ . .(외부로 호환되지 않는 주석 링크 삭제) (편집 취소)
  4. (최신 | 이전) 2012년 12월 29일 (토) 16:20‎ 윈리(토론 | 기여)‎ . . (11,178 바이트) (-104)‎ . .(→‎작풍성에 대한 평: 주관적인 평가 삭제) (편집 취소)
  1. 2006년 9월호 - 언론명,날짜가 있는데도 자신이 볼수가 없다고 하는건 도서관가서 카메라 인증하라는 격이군요
  2. 오히려 귀하가 주관적 편집하셨네
  3. 논란 문단과 관계있는 내용임
  4. 이후 러시아 문서 기사 보충함

--Ki331 (토론) 2013년 1월 6일 (일) 16:06 (KST)답변

  1. drama scope / 노정태 | 드라마틱 2006년 9월호 - 모아진 이 링크 외부로 호환 안됩니다. 서울1945가 남침유도설 긍정했다는 근거 재차 요구합니다.
  2. 일제 치하와 해방 이후~ 이부분은 전혀 주관적이지 않는데요. 일체 치하와 해방 정국의 혼란과 한계가 드라마의 주 내용이고, 호평과 비판을 동시에 받은 건 사실인데 이걸 왜 주관적 평가라고 하시면서 반말을 찍 까십니까?

--윈리 (토론) 2013년 1월 6일 (일) 16:43 (KST)답변

언론기사는 언론명, 날짜, 도서 경우는 ISBN이나 책 제목 기재하는데 출처가 인터넷에서만 확인이 되는게 출처가 아닐 텐데요? 그리고 해당 기사는 잘만 확인이 됩니다. 반말(위에 님아 등 장난성 의견 포함), 주관적 평 의견은 요약이나 토론 맨위부터 귀하 혼자서 하신말씀이신데? 없는 이야기하시면 곤란하십니다.--Ki331 (토론) 2013년 1월 6일 (일) 16:52 (KST)답변
드라마에서 한국전쟁을 박헌영의 주도적으로 계획하면서 김일성은 옆에서 우리가 공격하면 남로당 당원들이 봉기하는거 믿겠다면서 여러회에 반복으로 나옵니다.--Ki331 (토론) 2013년 1월 6일 (일) 16:54 (KST)답변
그리고 따로 편집이 됐지만 군정기 편집 부분도 같은 맥락으로 편집된것이구요.--Ki331 (토론) 2013년 1월 6일 (일) 16:56 (KST)답변
  1. 양식에 맞지 않는다고 장난성 의견으로 몰아 함부로 토론 문서 비운 건 잘못이겠죠? 이 문서에서 제가 반말한 내용은 보이지 않습니다. 반면 귀하께서는 '오히려 귀하가 주관적 편집하셨네' 등 반말하셨고요.
  2. 일제 치하와 해방 이후~ 이부분은 전혀 주관적이지 않는데요. 일체 치하와 해방 정국의 혼란과 한계가 드라마의 주 내용이고, 호평과 비판을 동시에 받은 건 사실인데 이걸 왜 주관적 평가라고 하시면서 반말을 찍 까십니까?
  3. 남침유도설에 대한 내용은 납득했습니다.

--윈리 (토론) 2013년 1월 6일 (일) 17:01 (KST)답변

서울1945는 호평과 비판을 동시에 받았는가, 비판만 받았는가? 편집

"백상예술 상받은거 팩트니까 지우지 말라고요 익명 님아 --윈리 (토론) 2013년 1월 5일 (토) 17:01 (KST) 토론이 필요하면 토론을 하면 되지 토론 문서까지 비워버리는건 무슨 심보죠? --윈리 (토론) 2013년 1월 5일 (토) 17:16 (KST)" 가장 맨위에 있어서 확인이 가능한데요. 그런데 이게 지금 본론이 아닐텐데요. 아무튼 호평과 비판을 동시에 어디에서 받았는데요?--Ki331 (토론) 2013년 1월 6일 (일) 17:04 (KST)답변
  1. 주석 달았습니다.--윈리 (토론) 2013년 1월 6일 (일) 17:05 (KST)답변
링크 확인했습니다. 제시하신 링크에 반박해봅니다. [1] 5월 20일부터 6월 28일까지 5주 간의 시청자 의견을 분석했다고 소개하고있음으로 49회는 한국전쟁이 시작하던 회라서 서울 1945 다시보기링크 출처로 사용하기엔 맞지않습니다.--Ki331 (토론) 2013년 1월 6일 (일) 17:15 (KST)답변
  1. 일제치하와 해방정국에 대한 호평과 비판이라고 서술하였습니다. 링크 자료가 한국전쟁 방영 시기를 포괄하지 못한다해도 서술에 문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윈리 (토론) 2013년 1월 6일 (일) 17:35 (KST)답변
귀하가 호평, 혹평을 동시에 받았다면서 추가한 링크가 출처에 사용하기엔 맞지가 않습니다. 귀하의 토론 본질은 한국전쟁이니깐요.--Ki331 (토론) 2013년 1월 6일 (일) 17:38 (KST)답변
일제치하와 해방정국에 대한 호평과 혹평이 출처가 어디인데요?--Ki331 (토론) 2013년 1월 6일 (일) 17:43 (KST)답변
광복 후 한국의 군정기를 다루는 장면에서 소련군은 해방군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1945년 12월 29일 소련군 중좌 페드로프가 소련군이 1945년 8월 이후 5개월간 북조선에서 드러낸 행태에 대한 기록한 문건에 의하면 치스차코프 사령관은 북조선에서 소련군이 한 약탈과 관련해 봉기가 일어난다면 “조선사람 절반을 교수형에 처하겠다”는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또 258 소총사단장 드미트리예프 대좌는 “조선사람은 35년간 노예로 있었다. 좀 더 노예로 있게 하자”고 기록하고 있다. 북한대학원대학교 신종대 교수는 “소련군 역시 미군과 마찬가지로 북한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 진주했고 진주 후에도 현지 사정에 무관심했다”며 “이는 북한 진주 초기 소련군의 비행과 풍기문란이 심각했음을 잘 보여주는 문건”이라고 말했다. - 해방정국 정황 묘사도 틀리는데요.--Ki331 (토론) 2013년 1월 6일 (일) 17:45 (KST)답변
  1. 저는 문서본문이나 토론에서 '한국전쟁'이라는 단어를 단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귀하의 토론 본질은 한국전쟁이라는 ki331님의 말씀은 무슨 의도이신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2. 링크의 초록에도 분명이 언급이 되어 있습니다. "본 연구에서는 <서울 1945>를 둘러싼 사회적 담론을 분석하고, 드라마 텍스트와 역사적 사료들을 비교 진단하여 이념 논쟁의 진원을 찾고자 한다. 담론 분석을 위해서 뜨거운 논쟁으로 우려와 기대를 받았던 드라마 <서울 1945>의 시청자 게시판 의견을 분석하였다. 2만여개가 넘는 시청자 의견 중 이념 논쟁이 가장 활발했던 5월 20일부터 6월 28일까지 5주 간의 시청자 의견을 분석하였다."
  3. 저는 해방정국으 묘사가 정확하다고 서술한 적이 없습니다. 소련군이 해방군인지 점령군인지에 대한 논란은 '서울1945가 호평과 비판을 받았느냐'라는 이 토론의 논제와 먼 것 같습니다.--윈리 (토론) 2013년 1월 6일 (일) 23:02 (KST)답변
"남침음모론"이 한국전쟁 의견인데요. 귀하가 저에게 남침음모론 이유를 밝혀달라고 제시하셨잖아요. 제시하신 링크는 말씀하신거처럼 5월 20일부터 6월 28일까지는 서울 1945는 49회 끝부분에서 남침하는 장면에서 끝나는데요. 토론에 논점인 한국전쟁이 시작하던 시기라서 맞지가 않는데 출처는 토론 내용에 맞게 제시되어야죠.--Ki331 (토론) 2013년 1월 7일 (월) 09:18 (KST)답변
"일제치하와 해방정국에 대한 호평과 혹평"은 귀하가 편집하신 내용인데 소군정의 고증이 틀리는데 어떻게 호평을 받았다는 건가요?--Ki331 (토론) 2013년 1월 7일 (월) 09:23 (KST)답변
  1. 서울1945 남침음모론 논쟁은 제가 납득을 했다고 말씀을 드렸고 그래서 문서 안의 그 서술에 대해서는 더이상 건들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서울1945에 대한 호평과 비판을 받았느냐'라는 논제와 무관한 거 같습니다.
  2. '일제치하와 해방정국'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소군정 뿐만 아니라 일제, 미군정 등 다른 요소들도 포괄하는 것이지요. 귀하께서는 계속 소군정 고증 오류나 한국전쟁을 강조하시지만, 서울1945가 한국전쟁만 다루는 드라마가 아닌데 소군정이나 한국전쟁 문제로 '일제치하와 해방정국'에 대한 서술까지 제지하시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즉, 일부 문제를 지적하시면서 이를 전체인 냥 일반화하시는 건 잘못되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저는 분명 '호평'만 받았다고 하지 않고 '비판'도 함께 받있다고 서술했습니다. 잘못된 고증이나 이념논쟁 등의 문제로 비판받은 내용도 여기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귀하의 논지와 저의 서술이 모순되는 것 같지 않은데 어째서 저의 편집을 인정하지 않으시는지 까닭을 알 수 없습니다.
  3. 소군정이 폭압적 점령군이라는 자료말고도 해방군이라는 자료들도 있습니다만 이 토론과는 맞지 않아 일부러 그 언급은 않고 있습니다. --윈리 (토론) 2013년 1월 7일 (월) 11:55 (KST)답변
"일제치하와 해방정국에 대한 호평과 혹평" 주석이 "해방전후사, 포스트식민주의 시각에서 본 기억 : 드라마 〈서울 1945〉를 중심으로"인데 이 출처는 드라마 종영 또는 종영 시기일때 작성된 출처가 아닙니다. 거기다 초록(필요한 부분만을 뽑아서 적음. 또는 그런 기록)에 호평받았다는 내용도 없습니다. 소군정 관련은 드라마에서는 해방군으로만 그렸기때문에 본 의견하고는 무관하다고 생각되네요.--Ki331 (토론) 2013년 1월 7일 (월) 12:14 (KST)답변
  1. 종영 이후 발간된 논문을 근거로 수정하였습니다. --윈리 (토론) 2013년 1월 7일 (월) 13:50 (KST)답변
완료 틀 붙입니다.

 완료 수고하셨습니다. 좋은하루 되십시오.--Ki331 (토론) 2013년 1월 15일 (화) 08:35 (KST)답변

서울1945는 남침유도설을 긍정하는가? 편집

  1. 서울1945가 남침유도설을 유도했다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몇회의 어느 장면에서 남침유도설을 긍정했는지 제시바랍니다. '전쟁 발발시 남로당원들이 봉기할 것'이라는 대사는 극중 김일성의 주장일 뿐이지, 드라마 자체에서 그 주장을 사실과 같이 묘사한 장면은 없습니다. 오히려 49회에 박헌영, 김일성이 무력에 의한 통일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할애하고 있고, 극중의 인물 최운혁의 말을 빌려 전쟁에 대해 "김일성, 박헌영, 소련의 욕심", "인민을 무고하게 희생시키고 역사와 민족 앞에 죄짓는 것"이라고 평가를 내렸습니다. 즉, 서울1945는 전혀 남침유도설을 긍정하는 드라마가 아니라는 겁니다. 필요하다면 해당 장면 동영상 링크 해드리겠습니다. --윈리 (토론) 2013년 10월 24일 (목) 18:59 (KST)답변
'김일성의 주장일뿐이지' 대사나 묘사 등을 제작진이 하는거죠. 말씀하신 49회 방송분 그 부분만 보고 바로 다음 장면은 보시지 않으셨나보네요. 김일성은 박헌영의 계획대로 움직이는 모습으로 등장하지요. 후반부 중공군의 서울 점령 시기 최운혁 등 회의 장면에서 약탈 관련 대사에서 최운혁은 소련군도 그랬다는 대사가 있는데 해방 정국 장면에서 소련군을 해방군으로 묘사됐습니다. 이런 앞뒤가 안맞는 장면이 많습니다.--Ki331 (토론) 2014년 1월 23일 (목) 09:46 (KST)답변

말씀하신 내용은 극중 인물 박헌영이나 김일성의 일방적인 주장이지, 남침유도설에 부합하는 미군측 혹은 남한측 정황은 전혀 묘사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극중 인물의 일방적 주장을 근거로 이 드라마가 남침유도설을 긍정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제2차세계대전을 다룬 영화에서 나치를 지지하는 친위대원의 대사가 있다고 해서 그 영화를 친나치 영화로 매도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소련군을 해방군으로 묘사하는 것과 남침유도설은 무관하다고 보구요. 영화에 대한 긍정적인 평은 배제하고 부정적인 평만을 맨 앞에 서술한 것 역시 부적절하다고 봅니다. --윈리 (토론) 2014년 2월 4일 (화) 20:19 (KST)답변

우파는 친일파, 좌파는 억울하게 모함받는것으로 묘사, 소군정을 해방군으로 묘사. 신탁통치가 무산되는 계기는 언론의 보도때문인것으로 묘사, 반탁을 주장하는 세력은 친일파, 이들은 찬탁을 주장하는 조선공산당을 민족반역자라며 묘사, 정판사위조지폐사건을 친일파때문에 벌어진 사건으로 묘사. 1949년에 김일성은 박헌영의 남로당 봉기는 기대할수없다고 판단했는데 극 중 평양 여운형의 빈청에서 박헌영은 이제 무장봉기가 필요하다는 대사에서 놀라워하고 시도때도없이 서울을 점령하면 봉기한다며 호언장담하는 박헌영을 믿거나 서울 점령 후 봉기가 없다면서 화내는 김일성 묘사 이 외에 고증 오류가 굉장히 많습니다.--Ki331 (토론) 2014년 2월 11일 (화) 10:59 (KST)답변
김창룡, 노덕술 등 친일파들이 해방정국에서 반공애국투사로 변신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고 그런 인물에서 모티브를 따와 극화한 것을 왜곡이라고 볼 수는 없지요. 북한측 인물들의 대사만으로 이 드라마가 남침유도설을 긍정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봉기가 없었다고 화내는 모습을 말씀하셨는데 그 장면이야 말로 박헌영이나 김일성의 발언이 망상적이었음을 반증하는 것이지요. 이 드라마가 남침유도설을 긍정한 드라마라고 주장하시려면 남침유도설에 부합하는 미군측 입장이나 남한의 정국이 묘사된 드라마 장면을 제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윈리 (토론) 2014년 2월 22일 (토) 14:45 (KST)답변
친일파 2명이 실제로 있었으니 우파는 친일파이고 김일성은 대사이니 어불성설이라고 얘기하는 윈리 님의 모순이네요. 김일성은 이미 1949년에 박헌영의 남로당 봉기를 부정적으로 보았다는 것이 1949년 소련자료가 있습니다. 극 중에서 박헌영 주도로 묘사하거나 이승만도 북침을 주장했으니 양쪽 다 잘못됐다. 이런게 양비론입니다.--Ki331 (토론) 2014년 2월 25일 (화) 11:56 (KST)답변
극중 23회에서 문동기가 문정관에게 탄백하라는 장면에서 자막에 탄백 소개하는 자막이 나오는데 이 출처를 살펴보니 한홍구의 2004년 대한민국사를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이 원본에서는 탄백을 하고 생계형 친일 경우 대부분 용서를 받았다는 내용 다음에 남한은 이런 최소한의 반성조차 없었다 등 내용으로 채워져 있습니다.--Ki331 (토론) 2014년 2월 25일 (화) 19:45 (KST)답변
고증 오류가 많다는 것이 직접 드라마가 남침유도설을 긍정한다는 근거가 되지는 못합니다. 드라마 전체 분위기상 그런 느낌이 들기 때문에 드라마가 남침 유도설을 긍정했다고 서술한다면, 그것은 개인의 느낌을 위키백과 문서에 반영하는 것이므로 올바른 편집이 아닙니다. --10k (토론) 2014년 2월 25일 (화) 04:41 (KST)답변
논란이란 서로 다른 주장을 내며 다툼하는 것이고 현재 편집된 내용은 사실을 극 중에서 오류를 낸 내용입니다.--Ki331 (토론) 2014년 2월 25일 (화) 12:09 (KST)답변
본인이 편집한 내용이 절대적으로 맞기 때문에 논란이 아니라는 주장은 상당히 위험합니다. 그리고 기타이야기라는 소제목은 설명적이지 않은 말이라 소제목으로 어울리지 않습니다. 최근 기여 내용에는 개인 연구가 많이 들어있는데, 출처를 자세히 밝혀 주시고, 비약된 부분은 스스로 삭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위키편집 지침을 숙지하고 계신지 모르겠는데, 위키백과는 개인연구자료를 올리는 곳이 아닙니다. --10k (토론) 2014년 2월 25일 (화) 14:01 (KST)답변
10k 님이 논란으로 변경하셨기에 이 변경에 대해 한 말이지 어디에도 내가 편집한 내용이 맞기때문이라는 내용은 없지요. 제가 윈리님의 편집을 되돌리기해서 분쟁이 발생한거라고 얘기하시는데 중간에 참여하셨으면 토론 전체를 파악하시고 의견을 남기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기타(其他)는 '그 밖의 또 다른 것 명사입니다.--Ki331 (토론) 2014년 2월 25일 (화) 15:09 (KST)답변


계속 김일성과 박헌영에 대한 이야기만 하시면서 정작 서울1945가 남침유도설을 긍정했다는 정확한 근거는 대지 않고 계십니다. 남침유도설 문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남침유도설을 긍정했다는 내용의 서술은 김일성이나 박헌영 두 개인의 발언과 긍정 여부로 성립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다시 한번 요구합니다. 이 드라마가 남침유도설을 긍정한 드라마라고 주장하시려면 남침유도설에 부합하는 미군측 입장이나 남한의 정국이 묘사된 드라마 장면을 제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친일파가 단순히 김창룡, 노덕술 두 사람 뿐이 아니었다는 것은 더 잘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반민특위 등 당시 사회적 문제들을 상기해보시면 이 문제가 상당히 사회적으로 표면화된 문제였음을 알 수 있을텐데요. 전혀 침소봉대의 성격이 아닙니다. 또한, 이승만이 북침을 운운한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리고, 앞서 제가 백상예술대상을 근거로 서울1945의 작품성에 대해 긍정적인 서술을 하였을때도 중복이라는 이유로 삭제하신 바 있습니다. 서울1945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이미 문서 후반부에 서술해놓고 문서의 개요부분에 해당하는 부분에까지 주장을 중복해서 서술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보십니까?--윈리 (토론) 2014년 2월 26일 (수) 00:19 (KST)답변
작품에 대한 평가가와 고증 논란을 분리합니다. 아울러, 기존에 Ki331님에 의해 서술된 작품평의 경우 호평 부분이 파트와는 성격이 다른 기획의도에 매몰되어 있었음으로 이를 다시 분리하였습니다. 시청자가 내린 평가와 제작진이 밝힌 기획의도는 성격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윈리 (토론) 2014년 2월 26일 (수) 00:29 (KST)답변
'공식적 역사와는 다른 시각을 제시함과 동시에, 주변 인물 및 사건사를 통해 공식적 역사에서 기록되지 못 한 이들의 기억을 복원함으로써 드라마를 통해서도 대안적 역사 쓰기가 가능함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윈리 님의 의견이군요. 이런게 독자연구이죠. 이승만이 북침설이라고 해서 뭔가했더니 로버트 T 올리버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군요. 이건 한국전쟁 관련된 자료가 아니고 개인적인 일화일뿐이죠. 북한에서 처음 북침설을 주장하다 소련의 기밀문서 해제로 논파되면서 현재 좌파 학계 등에서 들고나온게 '김일성의 남침이지만 남한도 전쟁 준비했다.' 이런게 바로 음모론입니다. 이승만의 북침설을 주장하고싶으시면 한국전쟁 남침관련 공식 자료를 제시하세요. 그리고 시상식에서 상받았다고 해서 작품성을 인정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주몽도 백상예술대상에서 대상 수상했지요. 본인의 생각을 얘기하지마시고 객관적 자료를 제시하세요.--Ki331 (토론) 2014년 2월 26일 (수) 13:01 (KST)답변


서울1945에 대한 평가 부분은 저의 평가가 아니라 주석에 첨부한 관련 논문의 평가입니다. 이것이 독자연구로 부적합하다면 귀하께서 주석에 달아놓으신 개인블로그의 의견은 더더욱 부적합하죠. 이승만이 한국전쟁 전부터 북진론을 피력한 것은 본 위키백과에도 서술된 사실입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고 싶으시면 이승만 문서에 가서 이의제기를 하시고 관철시킨 후에 논하시지요. 그리고, 자꾸 논지를 비틀고 계시는데 이 드라마가 남침유도설을 긍정했다는 근거가 뭡니까? 이 드라마가 남침유도설을 긍정한 드라마라고 주장하시려면 남침유도설에 부합하는 미군측 입장이나 남한의 정국이 묘사된 드라마 장면을 제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윈리 (토론) 2014년 2월 26일 (수) 13:32 (KST)답변
그리고 의견요청 지우지 마세요. 아직 토론이 끝나지 않았는데 왜 지우십니까.--윈리 (토론) 2014년 2월 26일 (수) 13:33 (KST)답변
그 링크는 드라마가 시작할때 다루는 링크로 2013년 1월 토론때도 거쳤는데 뜬금없이 새로운 자료를 제시하는거처럼 얘기하시는군요. 바로 위에 나오기때문에 지나칠수도 없는데 반복 주장은 하지마시길바랍니다. 제가 어디에 블로그를 링크했는지 말씀해주시죠. 허위유포하지마세요. 저는 블로그는 이용하지않습니다.--Ki331 (토론) 2014년 2월 26일 (수) 15:31 (KST)답변
토론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계속 의견요청을 지우는 이유가 뭡니까? 블로그 링크는 전자잡지 링크와 혼동했군요. 그 부분은 제 실수입니다. 근데 링크 자체가 에러 뜨는 불용인 것 같습니다만. 그리고, 이 드라마가 남침유도설을 긍정한 드라마라고 주장하시려면 남침유도설에 부합하는 미군측 입장이나 남한의 정국이 묘사된 드라마 장면을 제시해주시기 바랍니다. 뚜렷한 근거없이 위키 문서에 허위사실을 적시하는 것이야 말로 문제라고 봅니다. --윈리 (토론) 2014년 2월 26일 (수) 15:49 (KST)답변
의견 요청은 양쪽 토론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지않을때 제삼자 이용자들에게 도움을 구하는건데 지금 이 토론이 양쪽 주장으로 토론이 진행에 문제있다고 보여지지않아 제거했습니다. 윈리 님이 저의 의견을 논박부터 하시는게 먼저라고 봅니다. 묘사 내용이라면 2013년 1월 토론때나 계속해서 기재했는데요. 역사적으로 김일성 박헌영의 계획하에 일어난 남침을 드라마에서 김일성은 박헌영의 동조하면서 야욕을 보이는 인물로 묘사(박헌영 주도설) -> 소련군정을 해방군으로 묘사,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등을 친일파때문에 벌어진 일로 묘사 등. 한국 전쟁 남침을 남한 정부의 구조도 문제가 있어 벌어진 양비론으로 묘사 등 이게 음모론이 아니고 뭔지요?--Ki331 (토론) 2014년 2월 26일 (수) 15:55 (KST)답변
제3자가 와서 토론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게 바로 어제인데 무슨 엉뚱한 말씀을 하고 계십니까? 지금 귀하께서는 이 토론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주변 인물에 불과한 박헌영이나 김일성의 대사 몇개로 이 드라마가 남침유도설을 긍정했다고 서술하는 건 상당한 비약이고 왜곡입니다. 극중 주인공인 최운혁의 대사를 통해 김일성과 박헌영, 소련의 야욕이 신랄하게 비판되었고, 무엇보다 남침유도설에 부합하는 미국이나 남한의 정황이 전혀 서술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남한 사회는 반민특위 등 친일파 문제가 분명 사회적으로 큰 문제였고, 이승만의 북진 주장도 전쟁전부터 제기된 상황이었습니다. --윈리 (토론) 2014년 2월 26일 (수) 16:01 (KST)답변
노정태 | 드라마틱 2006년 9월호 - 모아진 이 링크를 열면 에러가 걸려서 직접 모아진 홈페이지에 가서 2006년 9월호를 살펴보았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링크입니다. 지지부진한 러브스토리라는 평가는 근거가 없는 바 삭제합니다. --윈리 (토론) 2014년 2월 26일 (수) 16:08 (KST)답변
저는 2013년 1월 토론 당시에도 물론 미국에 대한 얘기한적도 없습니다. 최운혁 그 대사는 주인공이 여주인공 구하려다 뜻대로 되지않자 소위 막말식으로 나온 대사이죠. 소련군정기가 21회 이후부터 등장하는데 역사적으로 묘사하는게 0.1초도 나오지않습니다. 뒤에 60몇회에서 공산군의 재점령 당시 회의 장면에서 인민군 한명이 지원군이 약탈이라도 할까 그러냐는 물음에 주인공은 소련도 그랬다는 대사 한마디 나왔다고 해서 그걸 소련을 중립적으로 묘사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8.15 광복 당시 벽돌공장 인부로 은둔하다 해방맞은 박헌영이 드라마에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활동하다 여운형에게는 광주에서 은둔했다는 엉뚱한 장면이 등장하는거처럼 이런 장면들이 곳곳에 많이 등장합니다. 이승만의 북침설은 편지 내용인데 이건 개인적 일화일뿐으로 이승만이 한국전쟁을 직접 행동이 있는 공식적 자료를 있으면 제시하면 그만일뿐 일화와 사실을 혼동하지마세요.
이승만이 전쟁 전 북진을 주장하였음은 위키백과 이승만 문서에도 서술된 문제입니다.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이의가 있으시면 이승만 문서에 이의를 제기하시고 토론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승만 본 문서에 북진 통일 주장이 버젓이 서술되어있는데 본 문서를 놔두고 여기서 딴소리를 하시는 이유가 뭐지요? 그리고, 하시는 말씀들은 서울1945가 남침유도설을 긍정했다는 근거가 아닙니다. --윈리 (토론) 2014년 2월 26일 (수) 16:34 (KST)답변
위키는 누구나 편집하는 사이트로 위키사이트끼리 출처로 이용하지않습니다. 그리고 토론이 나면 해당 문서 토론에서 토론을 하는겁니다. 여튼 이승만 북침이야기는 로버트 올리버에게 보내는 편지 내용으로 개인일화일뿐입니다. 일화와 사실을 혼동하시는데 구별 하시바랍니다.--Ki331 (토론) 2014년 2월 26일 (수) 16:41 (KST)답변
이승만 본 문서에 이승만이 북진을 주장한 해당 인터뷰가 근거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충분히 근거자료로 활용이 가능합니다. --윈리 (토론) 2014년 2월 26일 (수) 16:43 (KST)답변
김일성 귀국 때의 환영인파에 대한 묘사와 김일성 신화의 허구 혹은 소련의 꼭두각시 논쟁은 전혀 별개의 이야기입니다. 김일성 환영인파가 있었던 것은 역사적 사실이고, 실재한 환영인파를 묘사한 것을 드라마 제작진이 김일성에 대한 평가로 귀결시키려 했다 보기는 어렵습니다. --윈리 (토론) 2014년 2월 26일 (수) 16:20 (KST)답변
김일성 신화 혹은 소련의 꼭두가시라고 적은적 없습니다. 내레이션에서 김일성이 전설적인 항일영웅으로 대대적인 인파를 받는다는 묘사를 지적하는 겁니다. 정상진이란 인물은 유일한 조선인으로서 세계2차대전에 참전한 인물입니다.--Ki331 (토론) 2014년 2월 26일 (수) 16:26 (KST)답변
김일성이 전설적인 항일영웅이라는 명분으로 그의 귀국을 환영인파가 맞이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며 따라서 고증오류와는 무관합니다. --윈리 (토론) 2014년 2월 26일 (수) 16:34 (KST)답변
소련 환영행사 자체를 지적하는게 아니라 있지도 않은 전설적인 항일영웅 소문으로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가 고증 오류이란 얘기이죠.--Ki331 (토론) 2014년 2월 26일 (수) 16:36 (KST)답변
김일성이 전설적인 항일영웅으로 '알려진' 것과 항일영웅'인'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고증오류와는 무관해보입니다. --윈리 (토론) 2014년 2월 26일 (수) 16:39 (KST)답변
전설적인 항일영웅으로 알려져 있어 수많은 인파에 대대적인 환영을 받는다고 29회에서 소개하고있습니다.--Ki331 (토론) 2014년 2월 26일 (수) 16:45 (KST)답변
<권주희 | 텔레비전 드라마를 통한 대안적 역사 쓰기의 가능성에 관한 연구 : <서울 1945>가 다시 쓰는 해방전후사를 중심으로> 링크는 2013년 1월에 토론을 거쳤던 링크이기때문에 출처로 이용 될 수 없습니다. 더구나 드라마 시작할때 작성된 링크이구요.--Ki331 (토론) 2014년 2월 26일 (수) 16:48 (KST)답변

1.저는 문서본문이나 토론에서 '한국전쟁'이라는 단어를 단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귀하의 토론 본질은 한국전쟁이라는 ki331님의 말씀은 무슨 의도이신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2.링크의 초록에도 분명이 언급이 되어 있습니다. "본 연구에서는 <서울 1945>를 둘러싼 사회적 담론을 분석하고, 드라마 텍스트와 역사적 사료들을 비교 진단하여 이념 논쟁의 진원을 찾고자 한다. 담론 분석을 위해서 뜨거운 논쟁으로 우려와 기대를 받았던 드라마 <서울 1945>의 시청자 게시판 의견을 분석하였다. 2만여개가 넘는 시청자 의견 중 이념 논쟁이 가장 활발했던 5월 20일부터 6월 28일까지 5주 간의 시청자 의견을 분석하였다." 3.저는 해방정국으 묘사가 정확하다고 서술한 적이 없습니다. 소련군이 해방군인지 점령군인지에 대한 논란은 '서울1945가 호평과 비판을 받았느냐'라는 이 토론의 논제와 먼 것 같습니다.

논문 자료 제시하면서 제가 이러한 이야기를 말씀드렸는데 여기서 이에 대해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남침유도설 논란으로 전환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드라마의 남침유도설 긍정 여부와 함께 다시 검토해보아야 할 사안입니다. --윈리 (토론) 2014년 2월 26일 (수) 16:52 (KST)답변

김일성이 전설적인 항일영웅으로 '알려진' 것과 항일영웅'인'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전설적인 항일영웅으로 알려져서 수많은 인파에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는 고증오류와는 무관해보입니다. --윈리 (토론) 2014년 2월 26일 (수) 16:52 (KST)답변
  1. 1.서울1945 남침음모론 논쟁은 제가 납득을 했다고 말씀을 드렸고 그래서 문서 안의 그 서술에 대해서는 더이상 건들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서울1945에 대한 호평과 비판을 받았느냐'라는 논제와 무관한 거 같습니다.
  2. 2.'일제치하와 해방정국'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소군정 뿐만 아니라 일제, 미군정 등 다른 요소들도 포괄하는 것이지요. 귀하께서는 계속 소군정 고증 오류나 한국전쟁을 강조하시지만, 서울1945가 한국전쟁만 다루는 드라마가 아닌데 소군정이나 한국전쟁 문제로 '일제치하와 해방정국'에 대한 서술까지 제지하시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즉, 일부 문제를 지적하시면서 이를 전체인 냥 일반화하시는 건 잘못되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저는 분명 '호평'만 받았다고 하지 않고 '비판'도 함께 받있다고 서술했습니다. 잘못된 고증이나 이념논쟁 등의 문제로 비판받은 내용도 여기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귀하의 논지와 저의 서술이 모순되는 것 같지 않은데 어째서 저의 편집을 인정하지 않으시는지 까닭을 알 수 없습니다.
  3. 3.소군정이 폭압적 점령군이라는 자료말고도 해방군이라는 자료들도 있습니다만 이 토론과는 맞지 않아 일부러 그 언급은 않고 있습니다. --윈리 (토론) 2013년 1월 7일 (월) 11:55 (KST)
  4. "일제치하와 해방정국에 대한 호평과 혹평" 주석이 "해방전후사, 포스트식민주의 시각에서 본 기억 : 드라마 〈서울 1945〉를 중심으로"인데 이 출처는 드라마 종영 또는 종영 시기일때 작성된 출처가 아닙니다. 거기다 #초록(필요한 부분만을 뽑아서 적음. 또는 그런 기록)에 호평받았다는 내용도 없습니다. 소군정 관련은 드라마에서는 해방군으로만 그렸기때문에 본 의견하고는 무관하다고 생각되네요.--Ki331 (토론) 2013년 1월 7일 (월) 12:14 (KST)1.종영 이후 발간된 논문을 근거로 수정하였습니다. --윈리 (토론) 2013년 1월 7일 (월) 13:50 (KST)
  5. 완료 틀 붙입니다.

-- 이상 2013년 1월 토론 의견입니다. 5월 20일부터 6월 28일까지 5주 간의 이 시기는 드라마가 막 시작단계로 링크를 사용할수 없다고 2013년 1월 토론때도 거쳐놓고 윈리 님이 뭐라고 얘기하셨는지 읽어보시죠? 뭐를 안하셨다는건지? 드라마는 71회이고 님이 가져온 링크는 시작단계입니다. 2013년 1월 토론은 바로 토론 클릭하면 첫눈으로 볼수가 있는데 사람을 놀리지 맙시다.--Ki331 (토론) 2014년 2월 26일 (수) 17:07 (KST)답변

이 문서는 명백히 편집분쟁 중인 문서입니다. 다른 사용자분들의 의견을 구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의견요청 지우지 마시길 바랍니다.--윈리 (토론) 2014년 2월 26일 (수) 17:29 (KST)답변
전혀 제대로 답변이 된 것 같지가 않은데요. 2번만 보더라도 뭐가 답변이 되었다는 겁니까? --윈리 (토론) 2014년 2월 26일 (수) 17:29 (KST)답변
현재 남침유도설 긍정 여부 논쟁을 비롯하여 토론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다른 분들의 의견이 추가로 제시되거나 혹은 강제적인 조취가 취해지기 전까지 일단은 서울1945 문서에 참여를 중단하겠습니다.--윈리 (토론) 2014년 2월 26일 (수) 17:29 (KST)답변
먼저 토론을 제시한 윈리 님이 제 의견을 논박부터 하시고 그 다음엔 토론이 진행되지않을때 틀을 이용한거도 아니고 자신의 의견이 수용되지않는다고 해서 이용하는건 순서부터 틀린거죠. 님 의견에 대한 객관적 자료를 먼저 제시해보세요.--Ki331 (토론) 2014년 2월 26일 (수) 17:33 (KST)답변
Ki331님, 번거로우시겠지만, 님의 의견을 한 문장으로 다시 정리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토론이 과열돼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표시를 이용해서 한 문장으로 님의 의견을 다시 정리해 주시고, 거기서부터 토론을 다시 시작하도록 합시다. --10k (토론) 2014년 2월 27일 (목) 01:51 (KST)답변

사용자:Ki331의 문제제기: 드라마의 역사 왜곡 편집

드라마에서 역사적인 한국전쟁 발발 관련 내용이 아닌 김일성의 남침으로 시작했지만 남한의 구조도 문제가있는것으로 묘사하는데 그런데 김일성의 주도면밀한 계획이 아닌 박헌영이 호언장담하면서 김일성은 옳다구나 식으로 거기에 동조하면서 박헌영이 주도하는것으로 묘사하고있습니다. 또 문동기가 문정관에게 탄백하라는 장면에서 자막으로 생계형 친일 경우 탄백을 하면 대부분 용서를 받았다는데 이 출처는 김일성 연구로 알려진 한홍구의 대한민국사이란 책에서 소개하고있는 탄백 인용내용이 그대로 사용한것으로 보아 이 출처를 사용한거 같은데 이 출처에서 탄백 소개 다음에는 남한에서는 최소한 이런 반성조차 하지않았다고 소개하고있는데 북한에서 친일청산을 했는지 대해서는 어떠한 자료도 공개가되지않은걸로 알고있습니다. 탄백이란것도 국어사전에 의하면 한홍구가 소개하는 탄백 뜻하고도 다르게 소개되고있구요.

드라마에서 해방정국 묘사 또한 역사적인 군정기 모습과 다르게 묘사하고있습니다. 미군정은 친일파들에 의한 군정하는 것으로 묘사하는 반면에 소군정은 해방군처럼 묘사하고있습니다.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은 친일파때문에 벌어진 사건으로 묘사하고있고 당시 해방정국 테러사건은 좌파나 우파나 자신의 목적을 위해 서로 테러를 했는데 드라마에서는 좌파의 테러는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9월 총파업 같은 사건은 우파의 테러로 어쩔수 없이 일어난 일로 묘사하고있습니다.--Ki331 (토론) 2014년 2월 27일 (목) 08:04 (KST)답변

일단 한가지씩 차근차근 정리해봅시다. 남침유도설 긍정여부부터 풀어보죠. 자신에게 있는 논증부담을 외면하면서 동문서답을 하고 있는 게 어느쪽인지 되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가령, '서울1945는 남침유도설을 긍정하는가'라는 문제에 대하여 Ki331은 계속 김일성과 박헌영의 대화 장면만을 제시하실 뿐, 정작 남침유도설의 핵심인 미국이 북한의 남침을 유도한 정황이 드라마 상에서 묘사된 예를 제시하지 못하고 계십니다. 이 장면에 대하여 제가 수차례 제시를 요구를 하였는데 님은 계속 무시와 동문서답으로만 일관하고 계시는 겁니다. 미군정과 소군정, 좌파와 친일파에 대한 님의 주장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지도 않지만, 애초에 미군정, 소군정, 좌파와 친일파에 대한 Ki331님의 주장은 서울1945의 남침유도설 긍정여부와 별 관련이 없는 이야기들입니다. --윈리 (토론) 2014년 2월 28일 (금) 12:52 (KST)답변
동문서답 횡설수설을 윈리님이 계속하시는중이네요. 2013년 1월 토론때도 백상예술대상 수상했으니 작품성 어쩌고 하시고 주관적 운운하시면서 '일제치하와 해방정국의 혼란과 한계를 그려내어 호평과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는 독자연구를 편집하시면서 남한의 노덕술, 친일파 등이 있으니 역사적 사실이라면서 내가하면 로맨스 식으로 얘기하신분이 누구시죠? 2013년 1월부터 미국에 미짜도 얘기하지않았는데 계속 미국 이야기를 하시는지요? 음모론하고 미국하고 뭐 상관이 있다구요? 전설적인 항일영웅 김일성, 해방군 소련 등 이게 역사적 사실이라는 얘기라구요? 그 출처를 딱 하나만 제시해보세요. 귀하는 2013년 1월부터 객관적 자료인 단 1개도제시하지않았습니다.--Ki331 (토론) 2014년 2월 28일 (금) 18:18 (KST)답변
보세요. 또 지금 동문서답 중이시잖아요. 도대체 님이 말하는 '남침유도설'의 정의가 뭡니까? 미국이 북한의 남침을 일부러 유도하여 전쟁을 꾀하였다는 게 남침유도설의 내용 아닙니까? 님은 처음부터 서울1945가 남침유도설을 긍정한다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이 문서를 편집하신 겁니다. 애초에 남침유도설 긍정을 주장하면서 미국에 관한 이야기를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는 게 오류라는 생각은 들지 않으십니까? 살인 사건을 고소해놓고 정작 살인마의 이름은 대지 않고 동네 소매치기 사건만 운운하는 것과 지금 님의 행태가 무엇이 다릅니까? 2013년 1월의 토론 이후 서울1945를 다시보기 하면서 본인은 서울1945가 남침유도설을 긍정했다는 어떠한 장면도 보지를 못했기 때문에 다시 문제를 제기한 것인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님의 서술이 아무 문제가 없다면 논박하면 그만이죠. 애초에 토론 자체가 안되고 똑같은 이야기가 계속 반복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분들의 고견을 듣고자 의견요청을 한 것인데 님은 그것까지 삭제를 하면서 자기 주장만 내세우고 잇습니다. '일제치하와 해방정국의 혼란과 한계를 그려내어 호평과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는 독자연구가 아니라 논문의 주장을 인용한 것이구요, 님은 드라마 종영 전의 논문이기 때문에 이 논문 인용이 유효하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이 논문이 작성된 시점에서는 일제치하와 해방정국 묘사가 지나간 뒤이기 때문에 저는 이 서술이 아무 문제 없다는 입장입니다. 서로 이렇게 의견이 충돌하면 다른 사용자들의 의견을 참고하여 조율하면 될 일인데 님은 그마저도 거부한 것입니다. 계속 똑같은 이야기 반복하면서 님과 무의미한 대화를 하는 것도 지칩니다. 다른 사용자분들께서 문서와 토론을 읽어보시고 고견 제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윈리 (토론) 2014년 2월 28일 (금) 21:09 (KST)답변

사용자:Ki331의 남침유도설 문제제기에 대한 설명 편집

남침유도설이란 미국이 북한의 전쟁을 하게 유도한거만 남침유도설이 아닙니다. 남한의 구조가 친일파 세상천지로 전쟁이 일어날수밖에 없는 묘사 또한 음모론입니다. 이런 음모론은 교과서에서도 김일성의 남침이지만 전쟁 발발전부터 남북이 서로 교전을 벌이면 신경전이 대단했다면서 남한의 구조 역시 문제가 많았다 식으로 묘사하고있습니다. 드라마에서도 물론이구요. 드라마에서는 시도때도없이 박헌영의 봉기를 호언장담하면서 박헌영의 얘기를 듣는 김일성은 처음엔 놀라워하면서 동조하는 식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1949년 소련 외교문서에서 김일성은 애초 박헌영의 남로당 봉기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전설적인 항일영웅으로 알려져 있어 수많은 인파에 대대적인 환영받는다 묘사나 북한에서 탄백을 하면 생계형 친일 경우 대부분 용서를 받았다는 출처를 보면 한홍구의 출처를 사용한거 같은데 한홍구 출처를 사용한다는거 5.18 당시 북한군이 투입했다는 지만원의 출처를 사용한거랑 다른바 없습니다. 논문은 초록에서도 설명되어 있듯이 드라마 처음시작 시기에 시청자 의견을 참고했다고 적고있는데 1회와 49회는 내용도 일부 수정되었기에 출처로 사용될 수 없습니다.--Ki331 (토론) 2014년 3월 1일 (토) 08:20 (KST)답변

위키백과 지침: 독자 연구 금지 편집

두 분이 토론하시는데 접점이 없는 것 같아서 위키백과의 위키백과:독자 연구 금지 지침을 환기하고자 합니다. 특히 지침에서 본 문서와 관련이 깊어 보이는 부분은 위키백과:독자 연구 금지#공개 발표된 자료를 근거로 새로운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 부분입니다. 드라마가 상당히 오래전에 방영되었고, 그다지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적은 없어서 관련 문헌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위키백과 문서의 본문에는 드라마 내용과 실제 역사문헌을 비교하면서 작성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 상당 부분은 설득력도 있어 보이고, 상당한 가치가 있는 내용도 많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위키백과 정책상, 그와 같은 내용은 위키백과에 게재되어서는 안됩니다.

위에 제가 드린 링크에 자세한 예와 같이 설명이 되어 있지만, 다시 한번 이 문서의 내용으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1. 박헌영이 1945년에 블라디보스톡에 있었던 것으로 나온다. (출처: 드라마 18회)
  2. 하지만 박헌영은 당시에 광주에 은신하고 있었다. (출처 필요)

이 두 가지 사실은 출처를 밝힌다면 (문맥에 맞느냐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만) 위키백과에 게재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을 종합하면

  • 그러므로 드라마는 고증오류가 있다.

라는 결론을 내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결론은 비록 명백하다 하더라도 위키백과에 게재될 수 없습니다. “드라마에 고증오류가 있다”고 쓰려면 다른 문헌에 “드라마에 고증 오류가 있다"라는 내용이 이미 발표되었어야 합니다. 다른 문헌에 발표되지 않은 내용은 다른 두 문헌을 종합할 때 그 내용이 명백하다 하더라도 위키백과에 게재될 수 없습니다. (이 링크를 다시 한번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본 문서의 일부분은, 비록 내용이 좋다 하더라도 위키백과의 지침에 따라 제거되어야 합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본문의 내용 중 두가지에 대한 문헌 검증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1. 이 드라마는 남침유도설을 지지, 혹은 암시한다.
  2. 이 드라마에는 양비론·고증 오류가 있다.

이와 같은 문장이 기존 문헌에 발표가 되었는지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만일 믿을만한 문헌에 이와 같은 내용이 발표가 되었다면 내용을 유지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0k (토론) 2014년 3월 1일 (토) 10:09 (KST)답변

링크는 박헌영의 아들 원경 승려의 기사로 원경승려는 박헌영이 광주의 벽돌공장에서 은신 당시 어느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알려져있습니다. 드라마에서도 18회에서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활동하는것으로 묘사하지만 23회 여운형과 재회 장면에서 근황을 묻는 대사에서 광주에서 은신했었다는 대사를 하고있습니다. 제가 서울 1945 본문서에 편집한 이야기는 저의 독자연구가 아닌 드라마 서울 1945 총 71회 전체 감상한 뒤에 실제 역사와 비교하면서 편집했습니다.--Ki331 (토론) 2014년 3월 1일 (토) 10:22 (KST)답변
저도 자료들이 상세하고, 출처도 많아서 좋다고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본 문서에는 드라마 내용과 역사 문헌 내용이 조합되어서 서술되어 있기 때문에 위키백과에서 금지하는 독자연구에 해당됩니다. 똑같은 사례가 앞에 보여드린 링크에 똑같이 나옵니다. 좋은 출처에서 발굴한 자료들이 사장되는 것은 아까우므로, 일단은 해당 인물들의 문서로 그 자료들을 옮긴 후, 독자연구가 아닌 방법으로 내용들을 보충할 방법이 없을지 고민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위에 말씀드린 남침유도설, 양비론, 고증 오류에 대해서는 제가 {{출처}} 태그를 붙여놓고, 출처가 나오면 태그를 제거하겠습니다. 출처가 안나온다면 출처가 나올 때까지 다른 편집자들이 해당 내용을 제거할 수도 있습니다만, 위키 정책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10k (토론) 2014년 3월 1일 (토) 11:07 (KST)답변
일단 해당 내용은 삭제했습니다. 다음 내용들도 지적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Ki331 (토론) 2014년 3월 1일 (토) 11:35 (KST)답변
양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타 이야기”에 들어가는 내용들이 출처도 풍부하고 내용도 충실하기 때문에 버리기는 아까운 내용들이 많은데, 안타깝게도 드라마 내용과 역사 문헌이 조합되어 독자 연구가 될 가능성이 많고, 또 그 부분이 다른 드라마 문서들과는 달라서 위키백과의 일관성을 해치게 되는 점 때문에 고민을 좀 해봤습니다.
기존 본문에서는 “드라마 내용은 이렇다” “하지만 역사는 이렇다” 이런 식으로 배치돼 있어서, 이 내용들이 조합되어서 드라마 고증에 문제가 있다는 듯한 내용이 되고, 결과적으로 독자 연구가 되게 됩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방식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드라마, 영화, 소설 등 스토리가 있는 작품에는 줄거리가 게재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전체적인 줄거리를 한 소제목 아래에 정리한 후, 줄거리 중 역사적 사실과 다른 부분을 주석을 통해 문헌과 함께 상세히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줄거리를 정리하는 것은 아주 손이 많이 가고 어려운 작업입니다만, (저도 위키백과에서 사소한 줄거리 편집을 몇번 해 봤는데 정말 어렵더군요) 그것만 된다면 지금까지 정리하신 내용들을 모두 살릴 수 있고, 문서 내용도 보강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내용에 대해 주석을 통해 부연설명하는 것은 일반적인 문헌들 뿐 아니라 위키백과에서도 많이 쓰이는 방식이므로 전혀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아이디어일 뿐입니다. 더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있으면 좋겠군요. 여러 모로 좋은 기여 감사드립니다. --10k (토론) 2014년 3월 1일 (토) 15:47 (KST)답변
토론이 잘 진행되고 있는것 같지만 조금 참가를 하겠습니다. 지금 위에 10K님이 적은 내용중 출처와 독자연구금지에 집중을 해 주기를 부탁합니다. 첨언하면 "저의 독자연구가 아닌 드라마 서울 1945 총 71회 전체 감상한 뒤에 실제 역사와 비교하면서 편집했습니다."라는 말이 약간 애매합니다. 독자연구금지는 기재될 내용이 사실일것을 요구하는것이 아니라 백:신뢰출처백:확인가능한 내용일것을 요구하는것입니다. 즉 보도된 내용의 인용이 아니면 게재할수 없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애초에 편집대상이 드라마이기 때문에 이 드라마와 역사적 사실을 관련시켜서 보도한것을 인용하는것이 아니라면 두개를 연결시킬려고 하는 시도자체가 독자연구에 해당될수 있습니다. --라이딩(RidingW) (토론) 2014년 3월 1일 (토) 17:58 (KST)답변

문서 편집의 방향 편집

전체적인 문서를 보면, 백과사전의 내용으로서 필요한 전반적인 설명이나 줄거리, 감상·평가에 대한 내용은 없고, 잡다한 내용만 불어나고 있습니다. ('기타 사항'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당장 삭제하더라도 문서의 품질을 유지하는 데에는 별 차이가 없다는 말입니다.) 보다 균형 있는 서술이 필요합니다. jtm71 (토론) 2014년 3월 3일 (월) 16:08 (KST)답변

  1. 서울 1945 옹호
  2. 서울 1945 비난
서울 1945 이 드라마 관련 자료는 애초 이승만을 어쩌고했네 진보 드라마 어쩌고했네 하면서 서로 비난과 과장하는 이런 내용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해방전후사에 좌·우 이데올로기와 상관없이 주마간산 식으로 다뤄진 일부 한국 현대사의 오류를 바로잡는다는 취지로 제작한다고 기획의도[1]를 밝히지만,[2] 러브라인 등 지지부진하고 설득력 없는 전개로 논란이 되었다. 후반기에서는 최송희가 박창주에게 강간을 당하는 장면에서 전파 낭비라는 혹평을 받았다." 드라마 관련 평 링크입니다.--Ki331 (토론) 2014년 3월 3일 (월) 18:04 (KST)답변
논란이 중심 내용이 되려면, 문서의 제목은 '○□에 대한 논란'이 되어야 하겠지요. 다른 드라마에 대한 문서를 참고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jtm71 (토론) 2014년 3월 3일 (월) 18:23 (KST)답변

출처 필요 틀 관련 편집

'기타 이야기' 항목에 '출처 필요' 틀을 추가하였습니다. 이는, 독자연구의 내용을 확인하기 위한 출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며, 해당 내용이 드라마 〈1945〉와 관련하여 어딘가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서 제기되었던 내용인지를 확인하기 위한 출처를 말하는 것입니다. jtm71 (토론) 2014년 3월 3일 (월) 16:18 (KST)답변

삭제된 틀은 되돌렸습니다. 논란이 되는 글에는 출처를 요구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입니다. jtm71 (토론) 2014년 3월 3일 (월) 18:25 (KST)답변

드라마 평가에 대한 출처 편집

일단 남침유도설 긍정 여부 서술에 대한 논란이 정리된 점은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드라마에 대한 평가를 서술한 부분에 있어서도 문제점이 있다고 보아 적어봅니다.

  • 제가 서울1945에 대한 호평 출처로 제시한 <권주희 | 텔레비전 드라마를 통한 대안적 역사 쓰기의 가능성에 관한 연구 : <서울 1945>가 다시 쓰는 해방전후사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은 드라마가 종영된 시점인 2010년도 논문입니다. 2013년 1월 토론에서도 드라마 종영 전 논문이 출처로 부적합하다는 Ki331님의 주장을 존중하여 종영 후 논문을 출처로 제시하였던 것인데 Ki331님은 논문의 평가를 삭제하시고는 논문 링크를 별 관련없는 서울1945의 자체적인 기획의도 설명과 섞어버리셨습니다. 이에 대해 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drama scope / 노정태 | 드라마틱 2006년 9월호 - 모아진> 링크가 유효하지 않습니다. 직접 해당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2006년 9월호를 찾아보았으나 링크에 해당하는 내용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유효하지 않은 링크에 대한 삭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서울1945의 러브스토리가 지지부진하다는 평가는 근거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 부분 역시 삭제되어야 한다고 봅니다.--윈리 (토론) 2014년 3월 3일 (월) 19:14 (KST)답변
  • 제가 드라마 평가에 최초로 출처 제시했던 논문도 드라마 종영 이후인 2006년 12월 자료네요. 이역시 문제가 없는 것 같습니다. --윈리 (토론) 2014년 3월 3일 (월) 22:06 (KST)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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