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이덕일

마지막 의견: 5년 전 (InternetArchiveBot님) - 주제: 외부 링크 수정됨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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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생년은 1961년 10월 7일[1]로 나와 있습니다. 현재 구두점 오류가 나 있는 상태이니, 바로잡아야 합니다. --Neoalpha (토론) 2014년 9월 24일 (수) 15:28 (KST)답변

 완료— by revi^ at 2014년 9월 24일 (수) 17:37 (KST)답변

'김현구 교수가 임나일본부설을 옹호하는 식민사학자라 비판'은 사실과 다르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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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재판에서 재판부는 김현구가 임나일본설을 비판했음을 지적하며 이덕일이 김현구가 임나일본부를 비판한 사실을 알고도 고의로 그가 임나일본부설을 옹호하였다고 왜곡하였으며 재판과정에서의 태도도 논쟁의 본질을 벗어나는 태도를 취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게다가 해당 내용은 나무 위키에서는 조목조목 비판받는데다가, 다른 역사 블로거들도 비판하고 지적하는 부분입니다. 저도 김현구의 해당 서적을 읽어봤지만 그는 일본서기를 분석하여 역으로 임나일본부설이 옳지 않음을 지적하고 있으며 해당 서적의 후반부 내용도 임나일본부설의 허구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김현구 교수의 해당 서적의 대표적인 내용 하나 인용해보면,

문헌상으로나 실제로 왜가 한반도에 침입할 때에는 언제나 낙동강 하구인 김해 근처에 상륙하여 낙동강 유역을 따라 북상했다. 주 활동무대도 낙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하는 가야지역이었다. 따라서 한반도에 나타나는 전방후원형분이, 야마또정권이 한반도에서 활동한 것과 관련이 있다면 김해 근처나 낙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옛 가야지역에서 발견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전방후원형 고분들은 김해 근처나 낙동강 유역이 아니라, 왜와 우호관계로 활발하게 교류가 이루어지던 백제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더군다나 백제에서도 왜가 직접 활동했던 지역과는 무관한 한반도 서남부의 전남 영산강 유역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따라서 영산강 유역에서 발견되는 전방후원형 고분들을 가지고 한반도 남부경영론의 증거로 삼을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일본에서 기원하는 전방후원형 고분들이 영산강 유역에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지고 야마또정권이 한반도 남부를 경영한 증거라고 한다면, 고구려나 백제에서 기원하는, 횡으로 된 통로를 통해서 들어간 석실에 시체를 안장하는 횡혈식고분(橫穴式古墳)이 5세기말에서 6세기에 걸쳐 야마토정권의 핵심부라고 할 수 있는 야마또지역에서 대거 출현하고 있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묻고 싶다.

김현구 교수의 해당서적 185쪽에 나오는 부분입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내용이 주를 이루는 서적을 임나일본부를 옹호하는 서적이라고 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내용의 서적에 대해 이덕일은 '외형은 한국인이지만 내면은 일본인인 한국 국적의 김현구'라며 학문과 관련없는 인신공격도 해댔습니다. 과연 이덕일 항목의 해당내용이 올바른 내용인지 묻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이 의견을 작성한 사용자는 59.6.36.104(토론 · IP 정보)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다른 사용자가 나중에 추가하였습니다. 서명을 하시려면 물결표 4개(--~~~~)를 입력하시면 됩니다.

해당 내용은 편파적으로 양측의 저서를 인용한 뒤 아무런 출처도 없이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독자연구에 해당되어 삭제하였습니다.--Xakyntos (토론) 2016년 2월 7일 (일) 10:18 (KST)답변

외부 링크 수정됨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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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InternetArchiveBot (버그를 제보하기) 2018년 11월 17일 (토) 18:09 (KST)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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