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역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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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5년]] 문정왕후의 죽음으로 정치는 안정을 되찾았고, [[윤원형]]과 정경부인 [[정난정]]의 관직과 직위를 삭탈함으로써, 명종은 왕권을 펼칠 기회가 왔으나 기울던 조정은 이미 부패한 상태였다. 또한 명종 스스로도 어머니 문정왕후가 죽은 지 2년 만에 생을 달리하였다. 이 시기로 인해 조선의 정치 구도가 흐트러진 것은 사실이나, 이는 전적으로 [[사림]]들의 시각에서 비춰진 관점이므로 이러한 부정적인 시각을 완전히 수용하기는 어렵다.
 
[[1552년]] 왕위에 오른 [[조선 선조|선조]]는 [[이황]], [[이이]] 등 사림을 대거 중용하였다. 선조는 사림을 통해 자신의 취약한 권력 기반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또한 [[기묘사화]] 때 당쟁으로 억울하게 희생된 [[조광조]]를 비롯한 수많은 유학자들을 복권시켰으며, 훈구 대신인 [[남곤]], [[윤원형]] 등을 대역죄로 단죄하여 관작을 추탈하고 삭훈하여 민심을 안정시켰다. 그러나 후에 사림이 [[김효원 (성암)|김효원]](金孝元)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모인 [[동인 (정치)|동인]]과 [[심의겸]](沈義謙)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모인 [[서인]]으로 분리되어 [[붕당]]이 형성되자, 선조는 어느 한 쪽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두려워하였고, 이에 따라 정국이 단번에 교체되는 일이 잦았다.
 
거듭되는 사화 속에서도 사림들은 서원과 향약을 토대로 발전하여 갔으며, 드디어 선조 때에는 재차 정치무대에 등장하였다. 그러나 이들 속에서 또다시 당쟁이 일어나게 되어 정쟁은 파노라마처럼 되풀이되었다. 당쟁의 발단은 심의겸(沈義謙)과심의겸과 김효원(金孝元) 양파의 전랑직(詮郞職)을 에워싼 암투에서 비롯되었다. 이 양파의 대립 과정에서 동인과 서인이 생겼으니 일찍이 이준경(李浚慶)이 붕당의 징후가 보인다고 한 예언이 적중한 셈이다.
 
=== 외적의 침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