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장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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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ap of the Great Wall of China.jpg|오른쪽|300px|섬네일|중국이 주장하는 시대별 만리장성의 축조도. 한국 학계에서는 이를 부정하고 만리장성이 동쪽으로 요하 부근까지 진출했다고 본다.]]
[[파일:북직례~1.JPG|섬네일|300픽셀|대명여지도에 그려진 명장성 (직례성 지역)]]
[[파일:산동여도.jpg|섬네일|
=== 진한(秦漢)대의 장성 ===
장성의 기원은 [[춘추 시대]]의 [[제]](齊)에서 시작되어 [[전국 시대]]에 들어오면 [[초 (춘추 전국)|초]](楚)·[[위 (전국)|위]](魏)·[[연 (춘추전국)|연]](燕)·[[조 (전국)|조]](趙)·[[진 (영성)|진]](秦) 등 북방의 이민족과 국경을 접하고 있던 국가들이 국경에 북방의 방어를 위해 장성을 쌓았다. [[한 (전국)|한]], [[제 (춘추전국)|제]] 등은 북방의 이민족과 국경을 접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이 쌓은 장성은 초나라를 막기 위해 중국 본토 안에 건설되었다. [[기원전 221년|기원전 222년]]에 [[진나라|진]]의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한 후 중국 안에 있던 장성을 파괴하고 [[흉노]]를 방어하기 위하여 북쪽에 만들어졌던 여러 성들을 보수하고 서로 연결시켜 장성을 쌓았는데, 기록에 따르면 [[몽염]] 장군에게 장성을 쌓도록 명하여 [[기원전 214년]] 경에 완성하였으며 동쪽으로는 요동(현재의 [[랴오닝성]])에 이르렀고 서쪽은 임조(臨洮, 현재의 [[간쑤성]] [[민 현]])에 이르렀다고 한다. 최근에 발견된 [[츠펑 시]] 등지의 유적으로 미루어 보아 당시의 장성은 현재보다는 북방에 위치하였다. 이후 [[한나라]]의 [[전한 무제|무제]]는 흉노를 몰아내고 영토를 확장하면서 장성을 서쪽의 [[옥문관]]까지 확장시켰다. [[후한]] 시기에는 흉노의 세력이 크게 약화되어 이후 수백년 동안 장성의 개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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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 중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는 베이징 부근의 [[팔달령 장성]](八達嶺長城)이다. 수도인 [[베이징]]에서 80km 떨어져 있다는 지리적 장점과 함께 용이 춤을 추는 듯한 역동적인 형상 때문에 팔달령은 1년 내내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ref>서영진,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00&contents_id=3512&path=%7C184%7C197%7C&leafId=241 만리장성과 베이징 - 네이버 캐스트]</ref>
== 주요 장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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