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성주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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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 and Relativism: Some Key Controversies in the Philosophy of Science (1990)에서 과학철학자이자 인식론자인 [[래리 라우든]]은 미국 대학에서 가르치는 지배적인 유형의 철학([[포스트모더니즘]]과 [[포스트구조주의]])을 반지성주의의 대표로 지적하며, "사실과 증거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모든 것이 주관적 관점으로 귀결된다는 이념으로 대체하는 것은 미국의 정치 캠페인에 버금가는 현대 반지성주의의 가장 두드러지고 치명적인 징후"라고 표현하였다.
 
== 사상적 반지성주의 ==
20세기의 여러 정권은 대중의 정치적 반대를 신속하게 종식시키기 위해 지식인 계층을 권력으로부터 체계적으로 배제했다. 예를 들어 [[냉전기]](1945-1991) 동안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1948-1990)은 철학자 [[바츨라프 하벨]]을 정치적으로 체코인 대중의 신뢰를 받을 수 없는 간주하여 배척하였다. 하벨은 1989년 [[벨벳 혁명]]으로 일어난 탈공산주의 과정에서 10년 임기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즈]](1975-1979) 정권과 같이 사회를 완전히 재창조하고자 한 극단적인 이념의 독재정권은 잠재적인 반대자들, 특히 교육받은 중산층과 지식인을 선제적으로 죽였다. 캄보디아 역사의 원년(Year Zero)을 실현하기 위해 크메르 루즈의 사회정책은 탈산업화를 통해 경제를 재구성하려 하였고, 도시 지역의 전문직(의사, 변호사, 엔지니어 등) 및 외국과 정치적 관련이 있는 사람들을 반공주의자로 규정하고 철저히 배제하려 했다. [[폴 포트]]의 교리상 교육받지 않은 [[농부]]들만이 캄보디아의 진정한 [[프롤레타리아트]]로서 권력을 가질 자격이 있는 [[노동계급]]의 대표였으며, 이에 따라 반지성주의적 숙청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1966년 아르헨티나의 [[후안 카를로스 온가니아]] 장군이 이끄는 반공주의 군사독재 정권은 '장봉의 밤'에 정치적으로 위험한 학자들의 신병을 축출하기 위해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교에 개입하였다. 학계 지식인의 추방은 아르헨티나의 사회와 경제에 있어 국가적 두뇌 유출로 이어졌다.
 
=== 공산주의 ===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의 첫 10년 동안 [[볼셰비키]]는 차르 시대 지식인들이 프롤레타리아트를 적대할 가능성이 있다고 의심했고, 이에 따라 초기 소련 정부는 정식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주로 구성되었다. 또한 폐위된 부유계층을 "권리 박탈자"로 부르고 그 자녀들을 교육에서 제외하였다. 결국 1922년 작가, 철학자, 과학자, 엔지니어 등 지식인 200여 명이 [[철학자의 배]]를 타고 독일로 추방되었고, 나머지는 1923년 라트비아와 터키 등지로 추방되었다. 한편 혁명 기간 동안 실용적인 볼셰비키는 경제, 산업 및 농업을 관리하고 그들로부터 배우기 위해 "부르주아 전문가"들을 고용했다. [[러시아 내전]] 이후 사회주의를 달성하기 위해 [[소비에트 연방]]은 문해력과 교육을 강조하여 상아탑 지식인보다는 교육받은 "노동계층 지식인"을 통해 국가 근대화에 기여하도록 했다. 1930년대에서 1950년대 사이에 [[이오시프 스탈린]] 정권은 [[블라디미르 레닌]]의 인텔리겐치아들을 그에게 충성하며 특유의 소비에트 세계관을 믿는 인텔리겐치아로 교체했고, 이에 따라 소련 내에서 [[리센코주의]]와 같은 [[유사과학]]적 주장이 득세하기도 했다.
 
1937년 10월 [[벨라루스]]에서는 작가, 예술가, 정치인들이 소련 점령 당국에 의해 대량 학살당했다. 이 사건은 벨로루시 동부의 소비에트 통제 지역에서 벨라루스인에 대한 숙청과 탄압이 최고조에 달한 때였다. 1백명 이상의 저명 인사들이 1937년 10월 29~30일 밤에 처형되었다. 스탈린 사후에야 소련은 이들의 결백을 인정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던 1940년에는 소련 비밀 경찰이 [[카틴 대학살]]에서 폴란드 지식인과 군사 지도부를 대량 처형했다.
 
=== 파시즘 ===
[[이상주의]] 철학자 [[조반니 젠틸레]]는 좋은(능동적인) 지식인과 나쁜(수동적인) 지식인을 구분짓는 ''autoctisi''(자기 실현)의 개념을 제시하여 파시스트 이데올로기의 지적 기반을 확립했다. 그는 1925년 3월 30일 볼로냐에서 열린 파시스트 문화대회에서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파시즘은 지성이 아니라 지성주의와 싸운다. 지성주의는 지성의 질병이며, 다만 남용의 결과가 아닌데, 지성은 아무리 많아도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람이 스스로를 삶에서 분리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에서 파생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지성을 추상적으로 사용하여 타락해버린 "수동적 지식인"에 반대하고 지성을 실천에 적용하는 구체적 사고를 행하는 "능동적 지식인"을 이상으로 제안했으며, 이는 퇴폐적인 [[공산주의]] 지식인 [[안토니오 그람시]]에 대항하는 파시스트 [[베니토 무솔리니]]처럼 "행동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에 의하면 수동적 지식인은 아이디어를 객관화함으로써 지성을 침체시키고 이를 대상화한다. 이에 따라 파시즘은 행동 여부를 결정하는 데 있어 당면한 문제와 관련없는 것에 의존하는 [[유물론]]적 논증을 거부하였다. 젠틸레가 제시한 것과 같은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사고라는 기준은 비실용적이고 퇴폐적인 지성주의에 대한 반발로 이어진다. 이와 병행한 그의 철학 체계인 [[실제적 관념론]]에서 그는 지성주의가 능동적 지능과 단절되어 있으며, 사고의 핵심부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생각이 죽어버리고 분리된 실체로 표현된다고 비판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스페인 내전]] 중 1936년 살라망카 대학교에서 열린 Dia de la Raza 행사에서 스페인의 친-프랑코주의 장군 Millán Astray가 작가 [[미겔 데 우나무노]]를 공격하며 외친 "지식인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가 있다. 이 발언에 팔랑헤주의자들은 박수를 보냈다.
 
== 국가별 반지성주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