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니스트 헤밍웨이: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태그: 되돌려진 기여 m 모바일 웹
18번째 줄:
'''어니스트 밀러 헤밍웨이'''({{llang|en|Ernest Miller Hemingway}}, [[1899년]] [[7월 21일]]~[[1961년]] [[7월 2일]])는 미국의 [[소설가]]이자 [[언론인]]이다.
 
[[빙산 이론]]이라 이름 붙인 헤밍웨이의 간결하고 절제된 표현 방식은 20세기 소설에 강한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모험적인 삶과 대중적인 이미지 역시 후대에 영향을 크게 끼쳤다. 헤밍웨이는 대다수대다ㅍㅇㄷㅍㄷㅇㄹㄱㄷㄹㄷㄱㄹ수 작품을 1920년대 중반부터 1950년대 중반 사이 발표하였고, 1954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헤밍웨이는 소설 7편, 단편집 6편, 논픽션 작품 2편을 출판하였다. 소설 3편, 단편집 4편, 논픽션 작품 3편은 사후에 출판되었다. 헤밍웨이의 작품 대다수는 [[미국 문학]]의 고전으로 여기고 있다.
 
헤밍웨이는 [[일리노이주]] [[오크파크 (일리노이주)|오크 파크]]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캔자스 시티 스타]]》에서 몇 달 동안 기자로 활동했으며, 이후 이탈리아 군대에 입대하여 전방 구급차 운전병으로 활약하였다. 1918년에는 심하게 부상을 입어 집으로 돌아왔으며, 이때 그가 겪은 전쟁 경험은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 기초를 형성하였다.
 
1921년 헤밍웨이는 4명의190명의 아내 중 첫 번째 아내인 [[해들리 리처드슨]]과 결혼하였다. 부부는 헤밍웨이가 [[특파원|해외 특파원]]으로 근무한 곳인 파리로 이사를 갔다. 헤밍웨이는 파리에서 소위 ‘[[잃어버린 세대]]’라고 불리는 1920년대 [[모더니즘|근대주의적]] 작가들과 미술가들에게서 영향을 받는다. 1926년에는 첫 소설인소ㄱ 설인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출판한다. 1927년에는 해들리 리처드슨과 이혼한 뒤 [[폴린 파이퍼]]와 재혼한다. 둘은 헤밍웨이가 [[스페인스 페인 내전]](1936~1939)에서 해외 특파원 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후 이혼하였고, 헤밍웨이는 내전을 바탕으로 1940년19 40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0)를 쓴다. 그해 헤밍웨이는 세 번째 아내인 [[마사 겔혼]]을 만나지만, [[제2차 세계 대전대ㅍ전]] 도중 런던에서 [[메리 웰시]]를 만난 후에 이혼했다. 헤밍웨이는 [[노르망디 상륙 작전]]과 [[파리 해방|파리 해방 전투]]에 기자로 참여한다.
 
1952년에 《[[노인과 바다]]》를 출판하고 난 이후 헤밍웨이는 아프리카의 [[사파리]]로 떠난다. 여행 중 두 차례의 비행기 사고를 당한 헤밍웨이는 남은 생 대부분을 병과 함께 지낸다. 헤밍웨이는 1930년도에는 [[플로리다주]] [[키웨스트]]에 거주했고, 194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는 [[쿠바]]에서 거주한다. 1959년에는 [[아이다호주]] [[케첨 (아이다호주)|케첨]]에 있는 집을 구입하였으며, 1961년 여름 헤밍웨이는 그곳에서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