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나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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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는 강성했지만, 통일 이후 오래가지 못했다. 기원전 210년, 진시황이 사망한 뒤 그의 아들 [[진 이세황제|호해]]가 황제의 자리에 올랐고, 환관 [[조고]]와 같은 탐관오리들은 호해를 이용해 권력을 휘두르려 했다. 이들은 부정부패를 저지르며 국정을 어지럽혔으며, 전국 곳곳에서는 이들에 불만을 품고 반란이 일어났다. 결국 진나라는 마지막 황제인 [[진왕 자영|자영]]이 초패왕 [[항우]]에게 항복하며 멸망하였으며, 진나라의 뒤는 [[전한 고제|유방]]이 세운 [[한나라]]가 이었다. 진나라는 중국을 15년이라는 극히 짧은 기간 동안 통치하였으나, 통일 왕조의 기반을 놓고 황제 체제를 확립하였다는 점에서 중국 역사 전반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 역사안녕하세요 오늘 ==
== 역사 ==
초단=초뚱
=== 주나라 시대 ===
[[기원전 900년]]즈음에 [[주나라|주]]의 [[주 효왕|효왕]](孝王)을 시중들고 있던 [[비자]](非子)가 말의 생산을 실시해, 공적을 올렸으므로의 영(嬴)이라는 성을 받긴 무슨 걍 민기 신고 할께
 
진이 최초로 흥한 장소는 현재의 [[간쑤성]] [[리 현 (룽난 시)|리 현]] 부근이며, 현재 이 땅에서 진의 선조의 능묘라고 추정되는 것이 발견되어 주목을 받고 있다. [[기원전 770년]]에 주나라가 [[견융]](犬戎)에 쫓겨 도성을 동쪽으로 천도하는 과정에서 [[진 양공 (영진)|양공]](襄公)은 주 [[주 평왕|평왕]](周平王)을 호위한 공으로 주의 구지인 기(岐)에 봉해지게 되었고, 이후 진은 제후의 반열에 오른다.
 
=== 춘추, 전국시대 ===
진은 춘추시대에 들어가는 동시에 제후가 되었지만, 풍속적으로는 중원 제국(諸國)과 크게 달라 야만스러운 나라라고 업신여김을 받았다. 역대 진후(秦侯)는 주로 서융(西戎)과 항쟁하면서 영토를 확장했고, 법률 정비 등을 실시하여 나라의 기틀을 만들어 갔다. [[기원전 677년]]에는 수도를 [[옹성]](雍城, 현재의 [[산시성 (섬서성)|산시성]] [[바오지시]] [[펑샹 현]])에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