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제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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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화 ==
=== 20만 달러 지원 실패와 이승만 ===
[[이승만]]은 장제스가 [[김구]]에게 지원하려던 거금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는 정치자금에 관한 한 일찌감치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다. 미군정의 후원아래 친일 경제인들이 조직한 대한경제보국회가 [[1946년]] 초 2천만2,000만 원의 정치자금을 모았는데 이중 1천만1,000만 원이 이승만에게 전달될 정도였다. 이즈음 20만 달러의 반입을 포기한 김구는 이승만에게 이 돈을 주기로 약속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절 이승만과 재미교포 사회에서 받은 지원에 대한 보답 성격이었다.<ref name="화무1"/> 이때부터 돈을 손에 넣기 위한 이승만의 집요한 노력이 시작된다. 그는 1946년 2월 장제스 총통에게 전보를 보낸다. “20만 달러를 미국 안전신탁공사(American Security and Trust Company)에 예치시킨 뒤 워싱턴의 임병직 대령(이승만의 심복)에게 지불해달라”는 것이었다. 전보를 접수한 국민당 우티에청 사무장은 잠시 난감했지만 곧바로 장제스에게 “이 돈은 이승만이 아닌 김구가 수령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의견을 제출한다.<ref name="화무1"/>
 
[[이승만]]은 [[1946년]] [[2월]] 전보를 시작으로 47년 말까지 4~5차례에 걸쳐 장제스에게 이 자금을 자신에게 달라고 요청한다. 미군정과의 관계악화로 46년 말 도미했던 그는 이듬해 [[4월]]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일부러 상하이·난징을 거쳐서 돌아온다. 이때 장제스와 처음 대면한 그는 20만 달러 이야기를 꺼내지만 신통한 답변을 듣지 못한다.<ref name="화무1"/> 이때 장제스는 서울의 [[김구]]에게 전화했고, [[김구]]는 [[이승만]]이 귀국길에 상하이에 들렀음을 접하고 자금 일부를 국내로 보내줄 것을 요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