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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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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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과 가계 ====
[[파일:安重根父母.jpg|섬네일|left|아버지 안태훈(安泰勳)과 어머니 조마리아(趙瑪利亞)]]
안중근은 [[황해도]] [[해주군|해주부]] [[수양산 (황해도)|수양산]] 아래에서<ref name="안중근의사 기념관">[http://www.patriot.or.kr/laboratory/la_02.php 안중근의사 기념관]{{깨진 링크|url=http://www.patriot.or.kr/laboratory/la_02.php}}</ref> 아버지 안태훈(安泰勳)과 어머니 조마리아(趙瑪利亞)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진해군|진해]] 명예현감을 지낸 할아버지 안인수(安仁壽)는 해주 일대에서 미곡상을 경영하여 상당한 재산을 축적했다.<ref name="oh227">오영섭 《한국 근현대사를 수놓은 인물들(1)》(오영섭 저, 한영희 발행, 2007.4, 경인문화사) 227쪽</ref> 1911년 한국을 방문하여 안태훈 일가의 활동지를 답사한 베네딕토 수도원의 노베르트 베버 신부가 작성한 여행기에 따르면 안인수와 그의 아들 6형제와 가족 36인이 해주에서 일가를 이루고 살았을 당시에 안인수는 4백석의 토지를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ref name="oh227"/> 할아버지가 대지주에 미곡상으로 재산을 많이 축적하여 안중근은 어렵지 않은 유년기를 보냈다.
뒤에 일본은 안인수가 "항상 미곡 매입 대금을 지불하지 않는 등 각종 간악한 수단을 부려 재물을 모아 거부를 이루었다"거나, "성품이 탐욕하고 배부름을 모르고 일상 간계를 써서 타인의 재산을 수중에 넣으려고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안억핍(安億乏)이라고 다르게 불렀다"고 말한 반면, 안중근은 "조부가 자산가로서 도내에 이름이 높았다."고 회고했다.<ref>한국 독립운동사 자료 8, 173~174페이지</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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