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잭슨: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태그: 되돌려진 기여 각주 제거됨 |
|||
1번째 줄:
{{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다른 사람}}
{{여러 문제|1=
{{중립 필요|날짜=2024-4-16}}
{{요약 필요|날짜=2024-4-16}}
}}
{{음악가 정보
| 이름 = 마이클 잭슨<br >Michael Jackson
줄 29 ⟶ 33:
}}
'''마이클 조지프 잭슨'''<ref>County of Los Angeles Department of Health Services (2009). [[:파일:Michael Jackson death certificate.jpg|Michael Jackson death certificate]].</ref><ref name="allmusic">{{웹 인용|first= Steve |last= Huey |title= Michael Jackson – Artist Biography |url= http://www.allmusic.com/artist/michael-jackson-mn0000467203/biography |publisher= [[AllMusic]]. [[All Media Network]] |accessdate= May 31, 2015}}</ref>({{llang|en|Michael Joseph Jackson}}, [[:en:National Order of Merit (Gabon)|ONM]], [[1958년]] [[8월 29일]] ~ [[2009년]] [[6월 25일]])은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작곡가]], [[음악]] [[프로듀서]], [[무용가]], [[배우]]이다. [[팝]]의 황제<ref name="LJ3">Lewis Jones, 2005, p. 3 : "He wears the crown as the King Of Pop because no artist has broken his record of selling nearly 60 million copies of a single Album (Thriller)".</ref><ref name="Arar">{{뉴스 인용|first= Yardena |last= Arar |date= February 29, 1984 |title= Michael Jackson coronated latest king of rock 'n' roll |newspaper= [[Boca Raton News]] |page= 7A}}</ref><ref name="SBee">{{뉴스 인용|title= Is the thrill gone for singer Michael Jackson? |newspaper= [[Sacramento Bee]] |date= July 27, 1987 |page= B3}}</ref><ref>{{웹 인용|title= Michael Jackson: 10 Achievements That Made Him The King Of Pop |date= June 24, 2014 |accessdate= October 20, 2016 |publisher= Grammy.com |url= http://www.grammy.com/blogs/michael-jackson-10-achievements-that-made-him-the-king-of-pop}}</ref>
[[기네스 세계 기록]]에 가장 많은 상을 수상한 아티스트로 등재되었으며, [[음악]], [[춤]], [[패션]]에 많은 공헌<ref>{{뉴스 인용|first= Kasmin |last= Fernandes |title= Why Michael Jackson was a style icon |newspaper= [[The Times of India]] |date= June 25, 2014 |accessdate= March 11, 2016 |url= http://timesofindia.indiatimes.com/life-style/fashion/style-guide/Why-Michael-Jackson-was-a-style-icon/articleshow/37175580.cms?from=mdr}}</ref><ref>{{보도자료 인용|first= Don |last= Lemon |title= Michael Jackson's style influence lives on |agency= [[CNN]] |date= June 23, 2010 |accessdate= March 11, 2016 |url= http://edition.cnn.com/2010/SHOWBIZ/06/23/michael.jackson.fashion/}}</ref><ref>{{뉴스 인용|first= Jocelyn |last= Vena |title= Michael Jackson's Style Legacy, From Military Jackets To One Glove |date= June 26, 2009 |publisher= [[MTV]] |accessdate= March 11, 2016 |url= http://www.mtv.com/news/1614819/michael-jacksons-style-legacy-from-military-jackets-to-one-glove/}}</ref>을 한 인물이다. 무대와 영상 퍼포먼스를 통해 이름붙인, [[문워크]]와 복잡한 [[춤]] 동작을 대중화했다. [[대중음악]]에서의 시각적 요소를 강조하며 [[음악]] 산업을 부각시켰다. 마이클은 여러 방면에서 큰 영향을 미쳤는데, [[흑인]]으로는 최초로 흑인/백인 음악의 크로스오버로 음악계의 인종 장벽을 무너트려 [[대중음악]]에서 흑백장벽이 무너진 시대가 시작되면서 전 세계의 뿌리 깊은 병폐로 남아있는 [[인종 차별]]을 완화했다.
잭슨 가족의 7번째 자식인 마이클은 [[1964년]] 형제인 [[재키 잭슨]], [[티토 잭슨]], [[저메인 잭슨]], 그리고 [[말론 잭슨]]과 함께 팀의 막내로 [[잭슨 파이브]]로 데뷔했다. [[1971년]] [[모타운 레코드]]에서 솔로 활동을 시작한 마이클은 1980년대 초 대중음악에서 주목받는 인물이 되었다. 그의 [[1982년]] 앨범 《[[Thriller (마이클 잭슨의 음반)|Thriller]]》의 수록곡 〈[[Beat It]]〉, 〈[[Billie Jean]]〉, 〈[[Thriller]]〉등의 [[뮤직 비디오]]는 인종적 장벽을 깨고, 매체의 예술 형식과 홍보 수단에 혁명을 가져온 것으로 여겨진다. 이 비디오의 인기는 TV 채널 [[MTV]]를 유명하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눈과 귀를 모두 만족시키는 '보는 음악'의 시대를 여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또 흑인음악과 백인음악을 융합한 마이클의 앨범 사운드는 흑인=소울/알앤비, 백인=록/팝이라는 공식을 완전히 허물었다는 점에서도 찬사를 받는다. 잭슨의 1987년 음반 《[[Bad (음반)|Bad]]》는 수록곡인 〈[[I Just Can't Stop Loving You]]〉, 〈[[Bad (마이클 잭슨의 노래)|Bad]]〉, 〈[[The Way You Make Me Feel]]〉, 〈[[Man in the Mirror]]〉, 〈[[Dirty Diana|Dirty Diana〉]]를 모두 미국 [[빌보드 핫 100]] 싱글의 정상에 올려, 최다 1위 곡을 배출시킨 음반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는 1990년대 동안,〈[[Black or White]]〉와 〈[[Scream]]〉과 같은 영상으로 혁신을 계속했고, 1993년 [[슈퍼볼]] 하프타임 공연은 역사적인 무대로 자리매김하였다. 투어를 도는 솔로 가수로서 명성을 쌓았으며 무대와 영상 퍼포먼스를 통해 잭슨은 [[린댄스]]와 [[문워크]] 등 수많은 복잡한 춤 기술을 대중에게 널리 알렸다. 그의 독특한 사운드와 스타일은 다양한 음악 장르의 수많은 아티스트에게 영향을 미쳤다.
줄 204 ⟶ 208:
[[2009년]] [[3월]] 마이클 잭슨은 [[영국]] [[런던]]에서 복귀를 선언했다. 그는 이번 공연이 마지막이 될 것이며 팬들이 원하는 노래를 부를 것이라고 했다. 처음 10회의 공연이 계획됐는데 표가 빠르게 매진되자 40회의 공연이 더 추가됐다. 공연은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O2 아레나에서 7월 13일부터 [[2010년]] 3월 6일까지 열릴 것으로 계획되었고, 75만 개의 티켓은 전부 매진되었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09/03/13/0200000000AKR20090313237400070.HTML]</ref><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2548883]</ref>
== 죽음
=== 사망 ===
[[파일:Michael Jackson Star.JPG|섬네일|260px|왼쪽|잭슨의 사망 소식이 보도되고 많은 팬들은 그의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꽃을 두고 갔다.]]
[[2009년]] [[6월 25일]]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그의 저택에서 프로포폴 과다 투여로 인한 심장마비로 5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주치의 콘레드 머레이가 정맥 주사로 프로포폴을 주사하는 과정에서 기본 투여량보다 과도하게 투약한 것이 원인이었다. 12시 22분 [[911 (응급 전화번호)|911]]을 부르고 의료진과 구급대원들이 3분 만에 마이클의 맨션으로 출동했다. 주치의는 마이클 잭슨에게 법정에서 2.5ml의 프로포폴을 주입했다고 말했으나, 그의 집에서 다쓴 프로포폴 100ml 병이 발견되었다. 참고로, 그의 공식적인 사인은 [[프로포폴]]과 [[벤조디아제핀]] 중독으로 추후 발표되었다.
1시 13분 인근 병원인 Ronald Reagan UCLA Medical Center로 이송되었고, 2시 26분 병원관계자는 마이클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주치의 콘래드 머레이는 여자친구와 지인에게 약 40분가량 통화한 뒤 [[911 (응급 전화번호)|911]]에 신고한 것으로 확인되었다.<ref>김지방 기자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all&arcid=0003063050&code=41131111&cp=nv1 "마이클잭슨 살해 공식 확인"] {{웨이백|url=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all&arcid=0003063050&code=41131111&cp=nv1 |date=20100115060652 }} 쿠키뉴스 2010-01-11 작성
마이클 잭슨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보도되고 [[언론]]에서는 마이클의 죽음에 대해 근거없는 추측을 했다. 타블로이드지의 주사바늘, 자살, 슈퍼 박테리아, 피부암, 성형 후유증 보도 등이 이어졌지만 부검 결과 마이클 잭슨은 사망 당시 50세 미국인의 건강에 비춰봤을 때 건강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ref name="서울신문">[http://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091002601003 마이클 잭슨 부검결과] {{웨이백|url=http://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091002601003 |date=20150209123047 }}, 2009년 10월 2일 작성.</ref>
줄 215 ⟶ 219:
마이클의 사망 소식이 보도되고 뉴스 웹사이트는 사용자 폭주로 빠르게 과부하에 걸린다. 마이클의 사망 소식을 최초 보도한 TMZ와 [[뉴욕타임즈]]는 서버 폭파 현상을 겪었으며, [[구글]]은 마이클 잭슨 검색어 량이 수백만씩 폭등하자 [[DDoS]] 공격으로 간주하고 30분동안 마이클 잭슨 관련 검색을 차단했다.<ref>[http://www.cnet.com/news/google-thought-michael-jackson-traffic-was-attack/ Google thought Michael Jackson traffic was attack] {{웨이백|url=http://www.cnet.com/news/google-thought-michael-jackson-traffic-was-attack/ |date=20150619041415 }}, 2009년 6월 26일 작성.</ref>
7월 7일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그의 장례식이 거행됐다. 장례식에는 [[자넷 잭슨]], [[스티비 원더]], [[스모키 로빈슨]], [[어셔]], [[라이오넬 리치]], [[제니퍼 허드슨]], [[저메인 잭슨]] 등이 참석했으며, 마이클의 딸인 패리스 잭슨이 모습을 드러냈다
9월 3일, 사망 70일 만에 [[글렌데일 (캘리포니아주)|글렌데일]]의 포리스트론 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전설이 되어 묻히다|url=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15&aid=0002122623|출판사=|저자=|쪽=|날짜=2009년 9월 4일|확인날짜=2009년 9월 4일}}</ref>
줄 244 ⟶ 248:
[[2015년]] 12월달 'Thriller' 앨범은 [[RIAA]]에서 3000만장 판매(30X platinum)을 인증받았다. 미국 내 최초 3000만장 판매 앨범이라는 신기록을 세운 것이다.<ref>{{웹 인용 |url=http://stoo.asiae.co.kr/news/view.htm?sec=enter5&idxno=2015121812502167587 |제목=마이클잭슨 '스릴러' 3000만장 판매돌파 '美최초' |확인날짜=2016-03-11 |archive-date=2016-03-12 |archive-url=https://web.archive.org/web/20160312014702/http://stoo.asiae.co.kr/news/view.htm?sec=enter5&idxno=2015121812502167587 |url-status= }}</ref>
==
=== 영향력 ===
그는 대중음악계의 [[혁명]]을 불러왔다. 김태훈 음악평론가는 마이클 잭슨의 등장은 혁명과도 같은 일이자 완전히 다른 시대로 넘어가는 계기점이 됐다고 말했고<ref>[http://www.kookje.co.kr/mobile/view.asp?gbn=v&code=0500&key=20170512.99002011800 http://www.kookje.co.kr/mobile/view.asp?gbn=v&code=0500&key=20170512.99002011800]</ref> 박은석 음악평론가는 잭슨이 팝음악계 내부에 공공연하게 남아있던 인종적 취향의 벽 자체를 아우른 '뉴팝'을 발명했다고 평가했다.<ref>[https://www.youtube.com/watch?v=uq3-cThSB_0&feature=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uq3-cThSB_0&feature=youtu.be]</ref> 또 L.A.Reid 에픽 레코드 CEO는 "잭슨의 혁신적인 업적이 아니었다면 아마 지금 현대의 음악과 예술은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ref>{{웹 인용 |url=https://www.bet.com/news/music/2014/03/31/l-a-reid-to-release-new-michael-jackson-album-xscape.amp.html |제목=https://www.bet.com/news/music/2014/03/31/l-a-reid-to-release-new-michael-jackson-album-xscape.amp.html |확인날짜=2017-11-05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71107030415/https://www.bet.com/news/music/2014/03/31/l-a-reid-to-release-new-michael-jackson-album-xscape.amp.html |보존날짜=2017-11-07 |url-status=dead }}</ref> 영국 연구진이 [[빌보드 핫 100]]에 오른 1만 7천개의 곡을 분석한 결과 대중음악계는 1964년,1983년,1991년 총 3차례의 혁명을 맞이했으며 잭슨은 1983년 혁명기를 수놓은 대표적 팝스타로 조사됐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5/06/0200000000AKR20150506153400009.HTML 팝음악 최대 혁명은 91년 힙합 대중화"…빌보드차트 분석결과]</ref> 그리고 2014년 영국 의회에서는 의회 설립 80주년을 기념하여 '지난 80년간 세계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사건 Top 80'을 조사했는데 핵 개발, 케네디 암살, 컴퓨터 발명 등의 사건들과 함께 대중음악 분야에서는 유일하게 '마이클 잭슨의 삶과 음악의 영향력'이 49위에 선정됐다. (각계각층의 전문가 25명이 80가지 사건을 선정하고 세계 각국의 성인 10,000명이 투표)<ref>[https://www.theguardian.com/world/2014/nov/22/80-landmarks-in-80-years-that-shaped-our-world]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14/nov/22/80-landmarks-in-80-years-that-shaped-our-world</re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