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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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건설사업 참여 ====
[[1971년]] 정주영 회장은 혼자서 미포만 해변 사진 한 장과 외국 조선소에서 빌린 유조선 설계도 하나 들고 유럽을 돌았다. [[차관]]을 받기 위해서였다. 부정적인 반응만 받다가 1971년 9월 [[영국]] 바클레이 은행의 차관을 받기 위한 추천서를 부탁하기 위해 A&P 애플도어의 롱바톰 회장을 만났지만 대답은 역시 'No'였다. 이 때 정주영은 우리 나라 5백원짜리 지폐를 꺼내 거기 그려진 [[거북선]] 그림을 보여줬다. "우리는 [[영국]]보다 300년이나 앞선 [[1500년대]]에 이미 철갑선을 만들어 외국을 물리쳤소. 비록 쇄국정책으로 시기가 좀 늦어졌지만, 그 잠재력만큼은 충분하다고 생각하오."라며 설득해 결국 차관 도입에 성공할 수 있었다
[[1977년]]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의 분양특혜사건'''으로 재판을 받았으나 무죄로 풀려났다. 건축법 위반에 대해 징역 6월 벌금 500만원에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으나 [[현대산업개발]] 사장이었던 차남 [[정몽구]]가 서울지검 특수부에 구속되어 아들이 아버지 대신 처벌받는 전례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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