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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쪽은 등이 활처럼 굽고 3-4모가 졌으며, 붉은 갈색의 비늘잎으로 싸여 있고, 이 속에 새싹을 보호하고 있는 육질의 흰 부분이 있다. 잎은 어긋나고 긴 피침형으로 끝이 흔히 말리며, 밑동은 통 모양의 잎집이 되어 줄기를 감싼다. 7월에 잎 속에서 높이 60cm 정도의 꽃줄기가 나와 곧게 서며, 그 끝에 1개의 큰 산형꽃차례가 달리고, 총포는 길며 부리처럼 뾰족하다. 꽃은 연한 [[홍자색]]을 띠며, 꽃 사이에 많은 [[무성아]]가 달리고, 꽃받침은 6조각으로 타원상피침형이며, 바깥쪽의 것이 보다 크다. 수술은 6개이며 꽃받침보다 짧고, 밑부분에 2개의 돌기가 있다. 비늘줄기와 잎·꽃줄기에서 특이한 냄새가 난다.<ref name="글로벌세계대백과" /><br clear="all" />
 
== 재배 역사 ==
{{인용문2|아, 고기 좀 먹어봤으면. 이집트에서는 공짜로 먹던 [[생선]], [[오이]], [[참외]], [[부추]], [[파 (채소)|파]], 마늘이 눈앞에 선한데, 지금 우리는 먹을 것이 없어 죽는구나. 보기만 해도 지긋지긋한 이 [[만나]]밖에 없다니.|[[민수기]] 11장 4-6절}}
 
마늘이 정확히 어디에서 발원했는 지에 대해서는 학설이 구구하다.<ref name="신동선" /> 그러나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쿠푸]]가 건설한 [[대피라미드]]에는 피라미드 건설 노동자에게 양파와 마늘을 지급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고<ref>김영기, 《역사 속으로 떠나는 배낭여행》, 북코리아, 2005년, {{isbn|978-89-8931-650-3}}, 32쪽</ref> [[구약성서]]에서도 유대인이 이집트에 살 시절에 마늘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ref>[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article_view.php?aid=265183 신나고 힘나는 신앙-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해설 (100) 성경 안에서 만나는 기도의 달인 (17) - 강퍅함의 변주곡 : 이스라엘 백성], 가톨릭신문, 2015년 1월 11일</ref> [[고대 그리스]]에서 마늘은 식용과 약용으로 쓰였고<ref name="장마리펠트">장 마리 펠트, 김중현, 《향신료의 역사》, 좋은책만들기, 2005년, {{isbn|978-89-8922-281-1}}</ref>{{참고 쪽|188쪽}} [[고대 로마]]에서는 마늘을 민중의 음식으로 보아 마늘 냄새 풍기는 사람은 신전에 출입할 수 없는 규정이 있었다.<ref>정한진, 《향신료 이야기 - 달콤한 미각의 역사》, 살림, 2006년, {{isbn|978-89-5220-550-6}}, 62쪽</ref> 마늘의 원산지는 중앙아시아 초원지역에서 야생으로 자라던 것이 오랜 고대에 재배가 시작되어 유라시아와 북부 아프리카에 널리 퍼졌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ref name="장마리펠트" />{{참고 쪽|187쪽}}
 
동아시아 지역의 전래는 한나라 시절 장건이 서역에서 가져왔다고 한다.<ref nam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마늘이 언제 한반도에 유입되었는 지는 명확치 않다. 마늘은 한자로 산(蒜)이라 하지만 《박물지》에는 장건이 마늘을 가져오자 아마도 [[달래]]를 가리킨 말이었을 이전의 산(蒜)과 구분하기 위해 마늘을 대산(大蒜) 또는 호산(胡蒜)이라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ref nam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삼국유사]]》의 단군 관련 기사에 환웅이 곰과 호랑이에게 주었다는 "마늘 스무 쪽"(蒜二十枚)<ref>[http://db.history.go.kr/item/oldBookViewer.do?levelId=sy_001_0020_0020_0020 삼국유사 권제일 기이제일 고조선왕검조선(三國遺事 卷 第一 紀異第一 古朝鮮王儉朝鮮)]</ref>의 산(蒜)은 마늘이 아니라 달래였을 것이다.<ref name="한동하" /> 그러나 《[[삼국사기]]》 잡지편에는 마늘밭에 대한 기록이 있어 최소 [[삼국 시대]]에는 마늘을 재배하였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ref>한창기, 설호정 윤구병 김형윤 역, 《샘이깊은물의 생각 - 참 특별했던 삶, 그리고 오래되어 아름다운 것들》, 휴머니스트, 2007년, {{isbn|978-89-5862-201-7}}, 184쪽</ref> 조선 초 《[[향약집성방]]》에서는 마늘을 호마로 표기하고 있으며 재배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ref>《향약집성방》, 권85 향약 본초 채부 하품(鄕藥 本草 菜部 下品)</ref>
 
== 품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