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창 (화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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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7세때 [[장티푸스]]로 청각을 상실한 후 언어 장애의 증세가 있었다. 하지만 아들의 재능을 알아본 어머니의 소개로 이당(以堂) [[김은호]] 화백에게 [[동양화]]를 배워 [[1931년]] 조선미술대전에 출품하여 [[1940년]]까지 6회 입선, 특선 3회를 기록했다. 광복 전의 활동은 주로 일제의 내선일체 사상을 정당화하는 친일 활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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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화풍은 자유롭고 활달한 필력으로 힘차고 동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여, 고시적인 풍속화에서부터, 형태의 대담한 왜곡을 거쳐 극단적인 추상에 이르기까지 구상, 추상의 전 영역을 망라하는 폭넓은 작가적 역량을 구사했다.
또한 [[복음서]]의 [[예수]] 전승(傳承)을 한국적으로 해석, 예수를 한복을 입은 [[한국인]]으로 묘사한 [[동양화]]를 그렸는데 이는 예수를 한국적으로 묘사함으로써 [[기독교]]를 토착화하기 위한 신학적인 시도로 보인다. 하지만 [[역사적 예수]]는 [[로마 제국]], [[헤롯]] 왕실, [[예루살렘 성전]]의 착취를 받는 가난한 [[농촌]]공동체요,'신통한 것이 나올 수 없는 곳', '이방인의 갈릴리'라고 불릴만큼 무시와 소외를 받는 지역인 [[갈릴리]]에서 변변치 않은 [[직업]]인 목수로 살아간 [[민중]]이었는데<ref>《예수 운동과 갈릴리》/황성규 지음/한국신학연구소, 《갈릴래아의 예수》/안병무 지음/한국신학연구소</ref>, 김기창 화백의 그림에서는 [[양반]]의 옷을 입고 있는 모순이 있다.
대표작으로 <세종대왕 초상> <군마도> <청산도> <소와 여인> 등이 있다.
친일 미술인 단체인 조선미술가협회 일본화부평의원으로 있던 이당 김은호의 제자로, 그가 일제 군국주의를 찬양·고무하기 위해 그린 < 님의 부르심을 받고서 > < 완전군장의 총후병사 > 등은 [[1943년]] [[
==사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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