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윤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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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세계 대백과> '교사의 윤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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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월 5일 (토) 13:42 판

교사(敎師)에게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윤리(倫理)가 요구된다.

교사와 학생간의 윤리

목적으로서의 학생

어린이 시절은 미성숙 시절이기 때문에, 후일을 위한 준비기간으로 보고 그 시절이 희생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과오는 어린이를 어른의 축소물로 보는 데서 오는 것이며, 성인이 목적이라면 어린이는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우리는 곧잘 인간의 존엄성을 거론하면서도 어린이의 본성에 어긋나는 일을 시키고, 그가 할 수 없는 일을 기대하고, 그가 실패하면 정신적·육체적으로 준엄한 벌을 주는 것이다. 교사는 이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

개인차의 존중

민주사회의 특징은 개성의 존중에 있다. 그러므로 개성을 최고도로 발전시키는 것은 교수의 임무이다. 학교교육은 자칫하면 이와는 반대로 사람을 어느 틀에 박은 듯이 개성을 말살시키기 쉽다. 교사는 사회적 규범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개개 학생의 개성의 발전을 북돋아주는 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어린이를 자기가 그린 어떤 틀에 맞지 않는다고 불량아로 취급하는 것은 일종의 죄악인 것이다. 교과목에는 그 자체에 우열이 없건만 중요과목에만 노력하기를 바라고, 어느 학생이 자기의 소질에 맞는 방면에 노력하는 것을 저지하고 방해하는 경우가 있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현대사회는 구성원들이 각각 자기의 개성을 살리려고, 그것으로 고도로 분화된 사회에 봉사함으로써 보다 건전한 발달을 이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생각을 달리하고, 취미가 같지 않고, 능력에 차이가 있는 것을 부정적 요소로 보지 말고 오히려 긍정적 요소로 보아야 한다.

공평과 편애

학생들은 어느 특정한 몇몇 어린이들에게 사랑을 주고 두둔하는 교사를 가장 싫어한다. 흔히 어버이가 어느 자녀에게만 편애하는 것이 좋지 않듯이, 교사는 어느 아동이나 다같이 사랑해 주고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은 하나의 상식적 윤리이다. 그러나 편애의 현상이 상당히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소위 우등생은 귀여움을 받기 쉽고, 용모가 아름다운 어린이들이 또한 편애의 대상이 된다. 근래에는 학부형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지위가 어린이들을 다루는 데 차별을 가져 오게 한다는 현상도 있다. 이것처럼 교권(敎權)을 상실시키기에 알맞는 위험스러운 것도 없다. 그러나 편애를 삼가는 것과 모든 어린이를 똑같이 취급하라는 것과는 같지 않다. 즉 공평이란 것이 어떤 학생이고 똑같이 취급하라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어느 어린이는 교사의 도움이나 사랑이 그다지 필요없는 데 반해서, 다른 어떤 어린이들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 어린이는 교사에게서 사랑의 갈증을 채우려 한다. 저능아(低能兒)도 혼자서는 도저히 학교가 요구하는 부담을 감당할 수 없다. 즉, 어린이의 필요와 욕구에 따라서 적절한 지도를 하는 것이 교사의 임무이다. 퇴영적인 아동은 친구가 없기 쉬우니 교사가 친구노릇을 해 주고, 친구도 만들어 주는 데 노력해야 한다.

비밀의 엄수

학생들은 어버이에게도 알리지 않는 스스로의 비밀을 존중하고 숭배하며, 또 이를 믿는 교사에게 말한다. 이 비밀은 교사에게만 알려드리는 것이지, 이것이 다른 학생이나 어버이에게까지도 알려지는 것은 싫어한다. 물론 비밀의 성질에 따라 다르겠으나, 학생의 건전한 성장·발달을 위해서나 공공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면, 이 비밀을 함부로 발표해서는 안 된다. 믿고 말한 비밀이 공개되면 학생은 배신당한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그 학생과 교사와의 인간관계는 부정적으로 변해지기 일쑤이다. 카운셀링 제도가 있으나, 학생들이 응하기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비밀보장에 대한 의심 때문이다. 학생들의 문제는 학습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사회적·정서적 문제도 많다. 그것도 반사회적인 양심에 거리끼는 일인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친우들이나 어버이에게 알리는 것을 꺼려한다. 교사는 이 방면에 대해 민감하고 또 수양이 되어 있어야 한다.

체벌보다 무서운 벌

옛날에는 교사는 부모를 대신하여 매로 버릇을 가르쳤고, 서당(書堂)이라면 매를 든 스승을 연상할 정도였다. 오늘날에는 체벌을 금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체벌은 건전한 방법이 아니다. 왜냐하면 체벌을 받은 학생의 마음 속에는 교사가 기대하는 바와는 다른 반발현상이나 위축작용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체벌을 폐지한다고 하여 아동들을 벌하는 악풍(惡風)이 없어졌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눈으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입으로 힘을 못 쓰게 만들 수 있으며, 행동으로 압력을 내릴 길이 얼마든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전혀 무시해 버리고 인간대접을 해 주지 않는 것같이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고통을 주는 벌은 없다. 타인 앞에서 모욕을 주고 빈정대는 등 가지가지 방법으로 학생을 괴롭혀 기를 죽이는 벌을 받느니보다는 차라리 체벌을 받는 것이 학생들에게는 더 나을 때가 많다.

솔선수범

무릇 지도자는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어야 한다. 교육자는 연소자를 지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솔선수범이 더욱 필요하다. '선생님이 하시는데 어찌 우리가 그대로 있을 수 있느냐'라는 마음의 움직임이 그 교사의 지도력을 강화하는 것이며, 지도를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노동뿐만이 아니라 예의범절, 창조적인 연구활동, 레크리에이션 등 모든 원리는 마찬가지이다. 솔선수범없이는 학생들을 지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말뿐인 선생님'이라는 낙인이 찍히면 위선자(僞善者)의 대접을 받게 된다. 교직원 상호간의 윤리

교장과의 관계

교장도 교원임에 틀림이 없으나, 교장은 기관장으로 교사를 통솔하고 지도할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교장과 교사들과는 교사 상호간의 관계와는 다른 점이 있다. 이점을 악용하여 교사를 마치 하인과 같이 혹사하는 교장이 있는가 하면 '민주적 행정'을 오인하여 직원을 통솔하지 못하는 무능한 교장도 있다. 교장은 교사들의 인격을 충분히 존경해 주고, 교사의 창조성을 질식시키는 일이 없어야 한다. 교사의 모든 역량을 통합해 학교를 운영하는 것이 이상적이며, 학교행정에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주종관계만을 심하게 따지면 교사들은 때때로 고의적으로 교장을 골탕먹이는 일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 교장은 자기의 공을 세우기 위해서 교사들을 필요 이상으로 혹사해서는 안 된다. 민주적 교장이라면 공(功)은 교사들에게 돌리고 책임은 자기가 져야만 한다. 교사들은 흔히 교장을 비난하지만 교장은 교장의 입장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교장은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통할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교사들은 그를 중심으로 움직여 주어야 하고, 응분의 권위와 체면을 세워주어야 하는 것이다.

교사 상호간의 관계

같은 교사이기 때문에 서로 친밀감을 느끼면서도 '소인(小人)'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여러 가지 비윤리적인 일이 많다. 학생들 앞에서 동료 교사를 비평하거나 자신의 보신책(保身策)으로 학생을 분열시키거나, 자기와 사이가 나쁜 교사의 반이라 하여 그 반의 학생들을 소홀히 취급하거나 하는 등등의 사례가 있다. 개개인 교사들의 비윤리적인 행위로는, 다른 교사의 영전(榮轉)이나 명예를 방해하거나 손상시키기 위해 중상모략을 하는 등의 일도 있다. 또 신임교사가 부임하면 텃세를 하거나, 방어선이나 경계선을 치는 등의 일도 있다. 이런 모든 그릇된 풍조는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교사와 시민간의 관계

교사와 학부형간의 관계

자녀들의 교육을 학교에 위탁하는 부모들이 가장 궁금히 생각하고 있는 것은, 학교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이다. 따라서, 평상시 수업과 다른 일이 생기면 곧 알려주어야 한다. 이 의무를 게을리하면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특히 경제적인 문제가 따르면 여러 가지 억측이 생긴다. 집에 일찍 보내는 경우, 임시휴일의 경우라도 그 사유를 밝혀야 불평이 없어진다. 또 교사가 주의할 것은 학부형의 권력이나 금력에 아부하는 일이다. 이렇게 하면 교권의 상실은 물론이고, 어버이들이 주고받는 이야기 가운데서 어린이들은 예민하게 교사의 사회적 지위나 인간으로서의 위엄성을 판정한다.

일반사회인과의 관계

우리 사회는 물론이고 세계 어느 곳에서나 교사에 대한 사회인의 기대는 윤리면이 가장 크다. 지식전달의 기대는 다음의 문제이다. 일반시민에게는 허용되는 행위가 교사에게는 금지되거나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 교사는 그가 봉사하는 지역사회의 관습을 잘 인식하고, 거기에 어긋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교사는 또 윤리적으로 그 지역사회의 모델이 될 뿐만 아니라, 문화의 전달자로서, 나아가서는 문화의 창조자로서의 인적자원으로서 그 지역사회에 봉사해야 한다. 현대 학교는 지역사회학교를 지향하여 나가고 있으니, 학교가 지역사회 센터로서의 역할을 잘하기 위해서는 교사들이 그만한 준비를 해야 한다.

교직에 대한 윤리

교사는 모름지기 교직에 대해 긍지를 가져야 한다. 교직은 옛날부터 물질적 보수는 적은 곳이지만, 자라는 생명체의 천부(天賦)의 자질을 최고도로 발전시키는 책무를 가졌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교직에 있다는 사실을 감추려고까지 하는 교사가 있다. 이러한 교사는 자기의 성직(聖職)에 대해 스스로 모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교직이 고귀한 전문직이면 여기에 따르는 윤리가 있건만, 때로는 배경을 이용하여 영전운동을 하거나 금력으로 매수를 하려는 경향마저 있다. 또 교과서 채택을 싸고 일어나는 불미스런 흥정이나, 연구물의 표절이나 복사를 하는 일도 있다. 또 교직을 적당한 직장이 생길 때까지의 징검다리로 이용하는 일도 있다. 이러한 태도로 교직에 임하고 있다는 것은 본인과 학생을 희생시키는 일이며, 신성한 교육계를 흐리게 하는 행위이다. 교직은 인간이 자라는 것을 보고 기뻐하고, 그를 도와주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일하는 곳이다. 여기에는 물질로 계산할 수 없는 보수가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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