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우 (조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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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및 활동 ==
보우는 [[조선 중종]] 25년 [[금강산]] [[마하연암]](摩訶衍庵)에 입산하여 [[참선]]과 [[경학]] 연구에 전심하였다.<ref name="글로벌-보우2">[[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동양사상/한국의 사상/조선전기의 사상/조선전기의 종교사상#보우|동양사상 > 한국의 사상 > 조선전기의 사상 > 조선전기의 종교사상 > 보우]],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ref> 그후 하산하여하산하였는데, 이후 다시 [[설악산]] [[백담사]](白潭寺)의 승려으로[[승려]]로 있던 중, [[문정왕후]](文定王侯)가 선{{.cw}}교(禪敎) 양과를 부활시키자 판선종사도대선사 [[봉은사]] [[주지]](判禪宗寺都大禪師奉恩寺住持)가 되고 [[봉선사]](奉先寺) 주지로서 [[교종]](敎宗)을 맡았던 [[수진]](守眞)과 더불어 선{{.cw}}교 양 면에서 그 위세가 빛나기 시작하였다.<ref name="글로벌-보우2"/>
 
나중에 [[유신]](儒臣)들의 배척을 받아 [[제주]](濟州)로 유배되고, 거기서 죽었다.<ref name="글로벌-보우2"/> 또한 그의 힘으로 재흥했던 [[선교양종]]의 과(科)도 폐지되고 말았으나 그때에 들어온 승려들 가운데 [[임진왜란]] 때에 근왕호국(勤王護國)의 충성을 다한 [[휴정]](休靜){{.cw}}[[유정]](惟政) 등이 배출되어 법맥이 이어진 것은 [[조선의 불교]]로서는 매우 다행한 일이었다.<ref name="글로벌-보우2"/>
 
== 사상 ==
보우의 [[선 (불교)|선]](禪) 이해는 틀리지 않았지만 크게 독창적인 점은 없고 약간 소극적인 [[공 (불교)|공]](空)의 편견에 치우쳐 [[심경불이]](心境不二)의 묘제(妙諸)는 언급이 부족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ref name="글로벌-보우2"/>
 
그러나 그의 '''일정설'''(一正說)은 그 표현의 묘(妙)를 얻은 것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일정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ref name="글로벌-보우2"/>
 
{{인용문|하나라는[[하나]]라는 것은 둘도 아니고 셋도 아니며, 성실하여 망녕됨이 없는 것을 말하니 하늘의[[하늘]]의 이치이다[[이치]]이다. 그 [[이치]](理)가 공막(空漠)하여 아무런 조짐이 없지만 만상(萬象)이 울창하여서 물(物)의 어느것 하나 그 이치를 갖추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 그것의 체(體)를 말하면 [[하나]](一)일 따름이니 처음부터 물(物)이 둘이나 셋 있는 것은 아니다.…… [[바르다]](正)는 것은 치우치지 않고 그릇됨이 없고 순수하며 잡되지 않는 것은 이르는 것이니 곧 사람의[[사람]]의 마음이다[[마음]]이다. 그 마음이[[마음]]이 안정되어 딴 생각이 없고, 천지만물의 이치가 어디 한 군데 해당되지 않는 곳이 없으며 영통(靈通)하여 어리석지 않으니, 천지만물의 모든 일에 어느것어느 것 하나 응하지 않는 것이 없고, 일찍이 한 생각도[[생각]]도 사사로이 치우치거나 그릇된 적이 없다.}}
 
보우는 일정설(一正說)에서 하나(一)를 가지고 하늘의[[하늘]]의 이치를[[이치]]를, 바른 것(正)을 가지고 사람의[[사람]]의 마음을[[마음]]을 이야기 하였는데 그 취지는 한국 민족 사상의 한 전통을 이루는 것으로 평가된다.<ref name="글로벌-보우2"/>
 
== 저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