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병선

대한민국의 군인

함병선(咸炳善, 1920년 5월 30일~2001년 2월 5일)은 대한민국군인, 정치인이다.

함병선
咸炳善
대한민국 국가재건최고회의 기획위원장
(大韓民國 國家再建最高會議 企劃委員長)
임기 1961년 5월 28일 ~ 1961년 7월 4일
대통령 윤보선 대한민국 대통령
의장 장도영 대한민국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부의장 박정희 대한민국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
총리 장도영 대한민국 내각수반
수상 장도영 대한민국 내각수반

이름
별명 호(號)는 대동(大同)
신상정보
출생일 1920년 5월 30일(1920-05-30)
출생지 일제 강점기 평안남도 대동군
사망일 2001년 2월 5일(2001-02-05)(80세)
사망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학력 대한민국 국방대학교
경력 민주공화당 당무위원
국민대학교 행정학과 겸임교수
한국국민당 최고위원 겸 당무위원
신민주공화당 최고위원 겸 당무위원
자유민주연합 고문 겸 최고위원
신한국당 고문
정당 무소속
본관 강릉(江陵)
자녀 함상균(막내아들)
종교 개신교
웹사이트 대한민국 국립 대전현충원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回顧錄 - 老兵이 걸어온 길
군사 경력
복무 일본 제국 육군
대한민국 육군
복무기간 1938년 ~ 1945년 8월 15일 (일본 제국 육군)
1946년 1월 15일 ~ 1961년 7월 4일 (대한민국 육군)
근무 육군 제6사단
육군 제2훈련소
육군 제2군단
육군본부
국가재건최고회의
최종계급 일본군 육군 준위
대한민국 육군 중장
지휘 육군 제6사단장
육군 제2훈련소장
육군 제2군단장
육군본부 기획참모부장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
국가재건최고회의 기획위원장
주요 참전 제주 4·3 사건
여순 사태
한국 전쟁
상훈 태극무공훈장
함병선 장군의 군 시절
직속 상관이었던
예비역 대한민국 육군 대장
이형근 前 대한민국 연합참모총장
함병선 장군의 군 시절
직속 상관이었던
예비역 대한민국 육군 대장
정일권 前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
함병선
한글 표기: 함병선
한자 표기: 咸炳善
개정 로마자 표기: Ham Byeongseon
매큔-라이샤워 표기: Ham Pyŏngsŏn
예일 표기: Ham Pyengsen

생애 편집

평안남도 대동에서 출생하여 지난날 한때 직계 일족들과 함께 일본 오사카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1922년 직계 일족들과 함께 일제 강점기 조선국 평안남도 평양으로 귀국 후 1938년에 평양고보 중퇴를 하였으며 같은 해 1938년 일본군 예하 조선인 지원병 1세대로써 입대하였고 그 후 일본군 준위 시절에 일제 패망을 목도하였으며 그 후 미군정 관련 영역으로 들어왔다. 1946년 1월 15일 군사영어학교 1기생으로 입교하여 육군 소위 임관하였다. 그의 군사영어학교 동기로는 박기병 예비역 육군 소장을 비롯하여 훗날 모두 그의 직속 상관이 된 이형근, 정일권, 백선엽, 유재흥, 민병권, 박병권, 이한림, 민기식 등의 예비역 육군 장성 출신이 있었다.

현역 육군 장성 시절에는 역시 현역 영관 장교 시절의 이창선 예비역 중령과 이건영 예비역 중장 등에게 현역 군 직속 상관이었던 그는 대한민국 육군 소장 계급에 있었던 1954년 7월 18일을 기하여 대한민국 육군 제2훈련소장 직책에 보임되었으며 이 직책에 재직 중이던 1955년 1월 23일을 기하여 대한민국 육군 중장 진급한 그는 1955년 5월 11일을 기하여 대한민국 육군 제2군단장에 전보되었다. 그 후 대한민국 육군본부 기획참모부장 전보를 거쳐 대한민국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 직책을 지냈으며 훗날 대한민국 국방연구원 예하 부원장 및 육군 중장 시절 3·154·19를 목도한 그는 1년 후 대한민국 국방대학교 총장(육군 중장 계급) 직위로 재직 중이던 1961년 5·16 군사정변을 목도하였는데 당시 그는 국가재건최고회의 기획위원장 직위로 전보되었지만 결국 1961년 7월 4일을 기하여 육군 중장으로 강제 예편되었다.

그 후 제3공화국 정권으로부터 잠시 중용되어 민주공화당 당무위원을 잠시 지냈으며 제5공화국 시절에는 한국국민당 최고위원 겸 당무위원을 지내다가 그만두었고 그 후 신민주공화당 최고위원 겸 당무위원, 자유민주연합 고문 겸 최고위원을 거쳐 신한국당 고문 등을 각각 잠시 지냈으며 신한국당 고문을 지내다가 결국 1996년 2월 29일을 기하여 신한국당 탈당 선언하였으니 신한국당 입당을 한지 1개월만의 탈당이었다.

그 후 2001년 2월 5일을 기하여 별세한 그의 유해는 대한민국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

학력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