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許, 기원전 1046년 ~ ?)나라는 중국 주나라의 제후국이다. 국성(國姓)은 강성(姜姓)허씨(許氏)이다.

주(周) 제후국
허(許)
국성강성 허씨(姜姓許氏)
작위불명
지역불명
수도허(許) 현 허난성(河南省) 쉬창 시(許昌市) 동쪽
섭(葉)
이(夷), 성부(城父)
석(析), 백익(白羽)
용성(容城)
분봉자무왕(武王)
시조허 문숙(許文叔)
존속기간기원전 11세기 ~ 기원전 5세기
주요 민족불명
멸망원인(楚)나라에게 멸망
출전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역사 편집

서주 초기 편집

주나라 초기, 조정에서는 백이(伯夷)를 제후로 봉하였다고 한다.

춘추 시대 편집

기원전 712년 가을에 제(齊)나라 (강제)의 군주 제희공 강록(姜祿)은 정(鄭)나라, 노(魯)나라와 연합하여 허(許)나라를 정벌하였으며, 정나라에게 지배권을 넘겼다.

허나라는 기원전 576년, 정나라의 간접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남성 섭현(葉縣) 서남의 섭(葉)으로 옮겼다.

멸망 편집

기원전 506년에는 하남성 노산현(魯山縣)으로 옮겨갔다가, 초나라가 오나라에게 크게 패했을 때 정나라의 공격을 받고 멸망당했으나[1], 허 원공이 다시 재건하였다. 얼마 가지 않아서 다시 멸망했다.

국성 편집

국성은 '강성 허씨'(姜姓許氏)이며, 허나라가 멸망 이후에 후손들이 '강씨(姜氏)'와 허씨(許氏)'로 분적이 되었다.

역대 군주 편집

《한서·지리지》에 '허나라는 24대를 전했고 초나라에 멸망당했다.'라고 하였으나, 문헌에서 고증할 수 있는 군주는 18대밖에 없고, 청동기 명문에서는 약 3대밖에 고증할 수 없다. 그중 허 문숙부터 허 장공까지의 세계는 《자치통감외기》에서 볼 수 있다.[2]

稱號 國君本名 在位年數 在位年份 出身與關係 資料出處
1 허 문숙(許 文叔) 정(丁) 기원전 11세기 ~ ? 백이(伯夷)의 후예 《자치통감외기》
《춘추좌전주》
《청화간·봉허지명》
허 덕남(許 德男) 문숙의 아들 《자치통감외기》
허남 백봉(許男 伯封) 백봉(伯封) 덕남의 아들 《자치통감외기》
허 효남(許 孝男) 백봉의 아들 《자치통감외기》
허 정남(許 靖男) 효남의 아들 《자치통감외기》
허 강남(許 康男) 정남의 아들 《자치통감외기》
허 무공(許 武公) 강남의 아들 《자치통감외기》
허 문공(許 文公) 흥보(興父) 주 유왕, 주 평왕 시기 무공의 아들 《자치통감외기》
《죽서기년》
11 허 장공(許 莊公) 불(茀)
혹은 저인(苴人)
욱현호(郁賢皓)의 주에 따르면 재위 20년 기원전 731년 ~ 기원전 712년 문숙의 11세손, 문공의 아들 《자치통감외기》
《춘추좌전주》
《춘추석례》
12 허 환공(許 桓公) 정(鄭) 14년 기원전 711년 ~ 기원전 698년 《춘추석례》에 따르면 장공의 동생 《춘추좌전주》
《춘추석례》
13 허 목공(許 穆公) 신신(新臣) 42년 기원전 697년 ~ 기원전 656년 장공의 동생 《춘추좌전주》
14 허 희공(許 僖公) 업(業) 34년 기원전 655년 ~ 기원전 622년 목공의 아들 《춘추좌전주》
15 허 소공(許 昭公) 석아(錫我) 30년 기원전 621년 ~ 기원전 592년 희공의 아들 《춘추좌전주》
16 허 영공(許 靈公) 녕(寧) 45년 기원전 591년 ~ 기원전 547년 소공의 아들 《춘추좌전주》
17 허 도공(許 悼公) 매(買) 24년 기원전 546년 ~ 기원전 523년 영공의 아들 《춘추좌전주》
18 허남 사(許男 斯) 사(斯) 19년 기원전 522년 ~ 기원전 504년 도공의 아들 《춘추좌전주》
19 허 원공(許 元公) 성(成) 약 22년 기원전 503년 ~ 기원전 482년 도공의 손자 《춘추석례》
《춘추좌전주》
20 허남 결(許男 結) 결(結) 기원전 481년 ~ ? 원공의 아들 《춘추석례》
《춘추좌전정의》
《통지·씨족략》
이후 4대 불명
허남 자장(許男 子妝) 자장(子妝) 춘추 시대 《춘추좌전주》
《금문인명회편》
허남 자장퇴(許男 子𤖙𠂤) 자장퇴(子𤖙𠂤)[3] 춘추 시대 《금문인명회편》
허남 백표(許男 伯彪) 백표(伯彪) 춘추 시대 《금문인명회편》

역대 군주 가계도 편집


허 문숙(許 文叔)
허 덕남(許 德男)
허백 봉(許伯 封)
허 효남(許 孝男)
허 정남(許 靖男)
허 강남(許 康男)
허 무공(許 武公)
허 문공(許 文公)
?
허 장공(許 莊公)허 목공(許 穆公)
허 희공(許 僖公)
허 소공(許 昭公)
허 영공(許 靈公)
허 도공(許 悼公)
세자 지(世子 止)허남 사(許男 斯)?
허 원공(許 元公)
허남 결(許男 結)

각주 편집

  1. 《춘추좌씨전》 정공(定公) 6년의 기사 참고. 六年春(육년춘) : 정공 6년 봄에, 鄭滅許(정멸허) : 정나라가 허나라를 멸망시킨 것은, 因楚敗也(인초패야) : 초나라가 오나라에게 패전한 까닭이었다.
  2. 《資治通鑑外紀卷四·周紀二》:“환왕 8년 가을 7월에, 제, 정, 노가 허를 쳤다. 임오일에 허에 들어갔다. 허장공은 위로 달아났다. 정장공이 허장공의 동생 허숙을 받들어 허의 동편에 살게 하였다.(桓王)八年,秋七月,齊、鄭、魯伐許。壬午,入許。許莊公奔衛。鄭莊公奉許莊公之弟許叔居許東偏。허나라는 강성으로, 제나라와 시조가 같고, 주 무왕이 문숙을 허에 봉하여, 태악의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문숙 이후에 덕남, 백봉, 효남, 정남, 강남, 무공, 문공 흥보, 장공 불이 있었다. 장공의 뒤는 환공 정인데, 이가 허숙이 아닌지 의심한다. 許,姜姓,與齊同祖,周武王封文叔於許,以奉太岳之祀。文叔之後曰德男;曰伯封;曰孝男;曰靖男;曰康男;曰武公;曰文公興父;曰莊公茀。莊公之後桓公鄭,疑即許叔也。”
  3. 장(𤖙)은 장(醬)과 훈음이 같고, 퇴(𠂤)는 퇴(堆)와 훈음이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