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저동

서울 서대문구의 법정동

현저동(峴底洞, Hyeonjeo-dong)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에 있는 법정동이다. 행정동으로 천연동에 속해 있으며, 독립근린공원임시정부기념관 등의 역사유적과 안산도시자연공원 등의 자연녹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현저동
峴底洞
2020년대 현저동의 전경
2020년대 현저동의 전경
행정동서대문구 천연동
설치1946년 10월 1일
면적
[1]:10
 • 총0.41 km2 (0.16 sq mi)
인구
 • 총5,092

개요 편집

조선시대에는 한양도성성저십리의 서부 반송방 지하계 모화현(慕華峴)이라 이름지어졌던 곳으로, 본래 밤나무와 소나무의 수목이 무성하여 도성 사람들의 활쏘기 등 놀이터로서 모여드는 이가 많은 곳이었다. 현저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게 된 것은 1914년 4월 1일의 일로, 그 때에 조선총독부가 경성부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붙인 이름이다. 이는 오늘날 무악재라 불리는 안산인왕산 사이의 고개에 붙여진 무악현(毋岳峴) 아래에 있다고 하여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36년 4월 1일에는 명칭을 현저정(峴底町)이라고 하였다가, 해방 후 1946년 10월 1일에 다시 현저동으로 개칭되었다. 1975년 10월 1일에는 통일로 윗쪽의 지역을 무악동으로 분리하여 종로구에 편입시키면서 관할 면적이 줄어들었다.[1]:60-67

1975년 무렵 현저동은 난개발로 인해 무악동을 제외하였음에도 인구가 2만명을 넘는 수준의 큰 행정구역이었으나, 여러 차례의 재개발을 거치며 1998년 무렵에는 상주인구가 약 5천명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이에 1998년 10월 7일에는 독자적인 행정동으로서의 지위를 잃고, 천연동에 편입되었다.[3]:40

역사 편집

조선시대의 서부 반송방(盤松坊)은 한양도성의 교외 역할을 할 돈의문신도시로서 조선초기부터 기획된 공간으로, 의주로를 중심으로 주거와 유통망이 함께 발달하며 인구가 집중된 번화가를 이루어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현저동은 중국으로부터의 사신을 접대하는 영빈관인 모화관(慕華館)을 중심으로 하는 조선의 대중외교의 중심지로, 여러 역참(驛站)을 갖추고 있어 그에 수반된 인구가 다수 거주하는 곳이었다.[4]:109-118

교외 주거지역으로서 현저동의 역할은 1920년대에 경성부의 주택난이 심각해지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1918년 현저동에 서대문형무소가 들어서게 되면서 이축되기 전의 독립문은 경성부를 가로지르는 경성전차 영천선[5]:203의 서북부 종점 역할을 하고 있었다.[6] 이러한 교통시설에 힙임어 현저동은 서울 도심과 외곽 도시를 잇는 상업지대이자 주거지역으로 발전하면서 지가가 8배 이상 급등할 정도로 큰 확장을 이루었다.[7]:146

현저동은 본래 영천동과 구분이 어려운 생활경계를 이루고 있었으나, 1960~70년대 무렵 통일로의 확장, 성산고가차도의 건설 및 독립문·영은문주초의 이축 과정에서 독립적인 구획으로 거듭나게 되었고, 같은 시기에 통일로 건너편 지역이 무악동으로 분리되어 별도의 행정구역이 되었다. 독립된 행정구역으로서 현저동은 1980~90년대 서대문형무소의 폐쇄 이후 독립근린공원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재개발을 겪으면서 오늘날과 같이 독립문 극동아파트, 독립근린공원 및 독립문 등이 주요한 풍경을 이루는 모습으로 재탄생 되었다.[8] 그러나 독립근린공원과 떨어진 현저동의 북쪽은 현재까지도 개발방식에 대한 이견 등으로 인해 재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한성과학고등학교 주변으로 여러 빈집이 늘어서 있다.[9]

시설 편집

갤러리 편집

각주 편집

  1. 李在權, 具鶴緖, 李貞歚, 李在崑, 姜薰德 (1978년 12월 31일). 《洞名沿革攷 (西大門區篇)》. 서울: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023년 11월 1일에 확인함. 
  2. “법정동별(행정동 통반 단위) 성별 주민등록 인구증감”. 행정안전부. 2023년 11월 30일. 2023년 12월 4일에 확인함. 
  3. 《서대문구의회 의정백서 제8호》 (PDF). 서울. 2023년 12월 4일에 확인함. 
  4. 이왕무 (2016). “「漢城遠望圖」에 묘사된 19세기 후반 한양 도성 西郊의 풍경”. 《藏書閣》 (한국학중앙연구원) (36): 104-123. doi:10.25024/jsg.2016..36.104. ISSN 1229-7755. 2023년 11월 1일에 확인함. 
  5. 서울역사박물관장 (2019년 12월). 《서울의 전차》. 서울: 서울역사박물관 전시과. ISBN 979-11-90480-04-8. 2023년 12월 4일에 확인함. 
  6. 노주석 (2013년 8월 9일).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⑧ 1950~60년대 : 파괴와 재건”. 《서울신문》 (서울: 서울신문사). 2023년 11월 1일에 확인함. 
  7. 유승희 (2012). “1920~1930년대 경성부 주택문제의 전개와 대책”. 《아태연구》 (경희대학교 국제지역연구원) 19 (2): 131-164. doi:10.18107/japs.2012.19.2.005. ISSN 1225-8539. 2023년 11월 1일에 확인함. 
  8. “현저동 재개발 내달 착공-4천212가구 97년 완공”. 《중앙일보》 (서울: 중앙일보사). 1994년 2월 22일. 2023년 11월 1일에 확인함. 
  9. “4대문 안 빈집촌 “이젠 우리도”…재개발 기대감”. 《채널A》 (서울). 2022년 10월 22일. 2023년 11월 1일에 확인함. 

같이 보기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