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귀달 선생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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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귀달 선생 신도비(洪貴達 先生 神道碑)는 경상북도 문경시 영순면 율곡리에 있는 신도비이다. 1979년 1월 25일 경상북도의 유형문화재 제122호로 지정되었다.

홍귀달선생신도비
(洪貴達先生神道碑)
대한민국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종목유형문화재 제122호
(1979년 1월 25일 지정)
수량1기
관리홍건
위치
문경 율곡리은(는) 대한민국 안에 위치해 있다
문경 율곡리
문경 율곡리
문경 율곡리(대한민국)
주소경상북도 문경시 영순면 율곡리 산5
좌표북위 36° 32′ 42″ 동경 128° 14′ 05″ / 북위 36.54500° 동경 128.23472°  / 36.54500; 128.23472
정보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정보

개요 편집

신도비란 임금이나 고관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그의 묘 남동쪽에 세워두는 것으로, 이 비는 조선 연산군 때의 문신인 홍귀달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홍귀달(1438∼1504)은 23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세조 13년(1467) 이시애 난이 일어났을 때 난을 평정한 공을 세워 이조정랑에 오르고 다시 춘추관 편수관이 되어『세종실록』편찬에 참여하였다. 선조 12년(1481)에는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후 호조판서에 올랐으나, 연산군 4년(1498) 무오사화 때 왕에게 잘못된 정치를 고치도록 간언하다 낮은 벼슬로 좌천되었다. 연산군 10년(1504) 경원지역으로 유배를 가던 도중 단천지역에서 교살되었다. 중종반정 이후 그의 명예가 회복되어 이조판서로 추증되었고, 숙종 때 ‘문광’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비각안에 있는 비는 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올린 모습으로, 각 부분의 조각이 아름답다. 비문은 심하게 닳아있어 읽기가 힘든 상태이나, 다행히도『부림홍씨 세덕록』에 그 원문이 실려있다.

중종 30년(1535)에 세운 비로, 대제학을 지낸 남곤이 글을 짓고, 아들인 홍언국이 글씨를 썼다.

참고 문헌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