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시마성
가고시마성(일본어: 鹿児島城 가고시마조[*])은 가고시마현 가고시마시 시로야마 산에 있던 평산성이다. 다른 이름으론 쓰루마루 성(鶴丸城)이다. 가고시마 현 지정 사적이다.
가고시마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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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식 한자 표기 | 鹿児島城 |
가나 표기 | かごしまじょう |
국립국어원 표준 표기 | 가고시마 성 |
통용식 표기 | 카고시마 조 |
로마자 | Kagoshima-jō |
개요
편집에도 시대로 들어설 무렵인 1601년 시마즈 다다쓰네에 의해 축성되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시마즈 가문은 서군에 속해 패배했다. 그 후, 다다쓰네는 시마즈 가문의 수장으로서 우치 성을 대신할 쓰루마루 성 축성을 시작하여 1604년 완성하였다.
다다쓰네의 친아버지인 시마즈 요시히로는 성이 해안에 가깝기 때문에 방어에 취약함을 지적하고 끝까지 반대했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사쓰마 정벌은 실행되지 않았고, 시마즈 가문은 사쓰마번의 도자마 다이묘로 존속할 수 있었다. 그러나, 쓰루마루 성은 요시히로의 염려대로 막부 말기에 일어난 사쓰에이 전쟁 때 영국 전함으로부터 포격을 받게 된다.
가고시마는 재해가 많은 지역이었고, 남쪽에 위치한 지리적 이유 때문에 흰개미의 피해도 컸다. 몇 번의 소실과 파괴로 그때마다 재건되었다. 1874년 (메이지 7년) 성이 소실된 후로는 재건되지 않았다. 오테 문과 돌다리는 현존해 있고, 귀중한 자산이다.
구조
편집시마즈 가문은 중세식 산성을 각지에 지어 가신들이 성을 지키는 외성제도를 두었다. 본성인 가고시마 성도 북쪽에 혼마루, 남쪽에 니노마루가 위치해있지만, 단순한 구조로 방어에 취약한 거관(居館)의 형식을 띤 성이었다. 이 때문에 뒷산인 시로야마 산을 배후의 성으로 삼았다. 덧붙여 이 시로야마 산은 〈上乃山城〉으로 불리며 초대 조다이로 시마즈 도시히사의 손자 시마즈 쓰네히사가 임명되어 거주했지만, 일찍 죽었기 때문에 그 후임을 두지 않고 시로야마 산은 출입금지구역으로 되었다.
또, 천수 등 고층건물은 건립되지 않았다. 이것은 에도 막부에 순종한다는 의미를 띠고 있다. 고쿠다카 77만석의 다이묘의 성이라고 보기에는 매우 소박하다. 메이지 시대 혼부 야스시로는 그의 저서 《薩摩見聞記(사쓰마 견문기)》에서 〈不思議(의아하다)〉라고 평하고 있다.
현황
편집성에 남아 있는 것으로는 석벽과 해자 그리고, 사이고 다카모리의 시갓코터 등이 남아있다. 이들 석벽에는 사이난 전쟁의 흔적인 탄흔이 다수 남아 있다.
1901년 이후, 성터는 가고시마 대학의 전신인 제7고등학교 용지로 사용되었고, 현재에는 가고시마 현 역사자료 센터 레이메이칸, 가고시마 현립 도서관, 가고시마 시립 미술관이 들어서 있다.
교통
편집같이 보기
편집외부 링크
편집- (일본어) 가고시마 성 발굴조사
- (일본어) 가고시마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