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 다압 섬진진터 석비좌대

광양 다압 섬진진터 석비좌대(光陽 多鴨 蟾津鎭址 石碑座臺)는 대한민국 전라남도 광양시 다압면에 있는 조선시대의 좌대이다. 2006년 12월 27일 전라남도의 문화재자료 제262호로 지정되었다.

광양 다압 섬진진터 석비좌대
(光陽 多鴨 蟾津鎭址 石碑座臺)
대한민국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종목문화재자료 제262호
(2006년 12월 27일 지정)
시대조선시대
참고길이 125~148cm, 높이 51~58cm
위치
광양 다압면은(는) 대한민국 안에 위치해 있다
광양 다압면
광양 다압면
광양 다압면(대한민국)
주소전라남도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 135-1 외
좌표북위 35° 4′ 45″ 동경 127° 43′ 17″ / 북위 35.07917° 동경 127.72139°  / 35.07917; 127.72139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개요 편집

다압면 도사리 섬진마을에 위치하였던 섬진진은 하동과 연결되는 가장 큰 규모의 군사 요충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뿐만 아니라 진상면에는 섬거역이 있었고, 다압면 신원리 원동에는 섬진원이 있어 섬진나루는 전라도와 경사도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문헌상 섬진진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는 것은 임진왜란 때이다. [湖南鎭地]에 의하면 '처음 섬진에 군사를 배치한 사람은 이충무공으로 섬진의 건너쪽인 豆恥에 助防軍을 두어 이곳을 지키게 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曦陽誌]에 "임진왜란 후인 1603년 통영에서 이곳을 都廳을 설치하고 군사를 뽑기 시작하였으며, 정식으로 수군진을 삼은 것은 1705년으로 이곳에 종8품의 별장을 두었다"고 하였다. 이 별장의 직급을 언제 높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여지도서]에는 종6품으로 기록되어 있다.

섬진진에는 성이 축조되지는 않았으나 [曦陽誌]에 "誓海館"이란 집무청 및 창고 6채와 衙舍 등 8채의 집이 있으며, 병선으로는 防船 2隻, 伺候船 2隻이 있었다. 또한 당시의 주둔군은 359명이었으며, 鎭 주변에는 민가 88호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기록 당시 鎭은 폐쇄되고 없었으므로 구체적으로 어느 시기를 가리키는 것인지 알 수 없고 鎭이 폐쇄되기 이전인 1895년 이전이라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현재 鎭址의 유적상황을 살펴보면 [수월정유허비] 주위에 별장들의 공적비를 세웠던 것으로 추정되는 비의 좌대 4기가 남아 있다. 또한 衙舍와 內衙, 진창과 작청, 군기, 장청, 성황당 터와 배를 묶는데 사용하였다는 선돌바위가 있다.

참고 자료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