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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 사유편집

탑골공원은 고려시대 흥복사, 조선시대 원각사가 있던 자리였으며, 대한제국 시대에 문을 세우고 서울 최초의 도시공원인 파고다 공원으로 정비하게 되었음. 〈구 탑골공원 정문〉은 1910~1913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1967년 공원 정비 당시 서울대학교 법대 정문으로 이전(1969 실시)되어 현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초등학교의 정문으로 이용되고 있다. 해당 유적은 3.1 독립운동, 4.19 혁명 시 역사적 현장을 지켰던 유산으로 보존해야 할 가치가 충분하다.

조사 보고서편집

문화재 현황편집

  • 소재지: 종로구 연건동 177-1, 180-3
  • 규 모: 정사각기둥 4주
  • 소유자: 서울대학교

탑골공원 및 정문 조성시기편집

  • 왕실소유의 도시공원 조성(1897~1904)
    • 광무 초년에 해관 총세무사 브라운에 의해 공원 조성이 건의되었으며 부지 확보를 위해 민가 철거를 실시함
    • 1901년 9월 발간된 『더 코리아 리뷰』에 따르면 탑골공원 조성공사가 진행 중이며, 담장과 북문, 남문이 먼저 조성된 것을 알 수 있음
    • 팔각정은 광무 6년(1902년) 9월 초순 착공하여 1903년 말에 완공된 것으로 추정됨
    • 이후 원각사지 10층 석탑 둘레에 돌난간이 설치되고, 대원각사비 주변으로 방형의 석지를 조성하고 정비함
    • 1903년 군악대가 탑골공원 남서쪽 신축한 양옥으로 이전해오면서 탑골공원 내 동북쪽 담장에 1904년 호자식 목재 음악당을 건축하여 연주공간을 마련
  • 조선총독부로의 공원 이관 및 일반 개방에 따른 정문 건립 등 시설 보완 (1910~1913)
    • 1910년 관리권이 총독부로 이관, 1913년 7~8월에 걸쳐 일반에게 매일 야간까지 개방
    • 서편의 이왕직양악대와 동편의 북부경찰서(1910년 이전 중부경찰서) 청사 건설 등으로 경계부가 변형되면서 입구부가 넓어진 비대칭 형태를 띠게 됨
    • 이 때 일반개방에 따른 화려한 정문(폭 23m의 반원형) 설치, 이용자 편익 및 휴게시설(사아옥, 온실, 공중변소, 벤치 등) 보완
  • 상업시설 도입된 도시공원화 (1914~1916)
    • 끽다점(청목당) 및 섬과 다리를 축조한 인공 연못 조성, 사아옥, 공중변소, 관리사무소 추가 설치, 담장 측에만 있던 산책로가 내부 화단 사이에도 조성
    • 1916년 호자식음악당 철거, 용산주차군사령부에서 가제보형 음악당 이축

3.1 독립운동 이후 탑골공원과 탑골공원 정문의 변천편집

  • 1919년 3.1 독립운동의 핵심적 공간이 된 이후 조선총독부에서 공원 폐쇄
  • 1928년 조선총독부에서 경성부청으로 이관 및 재개방(1928.5.31. 동아일보)하여 33년에는 아동공원으로 새 단장 계획(1933.1.22. 동아일보)
  • 광복 전후에도 각종 정치 행사 및 집회 개최 장소 및 도시공원으로 이용되면서 3.1 독립운동 기념 시설 및 이승만·손병희 동상 설치 등은 있었으나, 공원 구조상의 변화는 크게 없었던 것으로 추정됨
  • 1967년 민자사업으로 추진된 파고다공원 현대화 시 정문을 현재의 한식 정문으로 교체(1967.12.12. 동아일보, 매일경제 등)
  • 공원 내 단청과 담장 개축, 독립만세운동 기념 부각 동상 10경 진열, 아케이드 상점 설치 등을 총 공사비 1억 7천여만원으로 시행하고 1967.12.12 중수 준공식을 거행
  • 정문은 기존 정문을 대신하여 국보 제51호 강릉소재 〈객사문〉을 본딴 한식으로 새로 세웠으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글씨가 새겨진 〈삼일문〉이라는 현판을 부착
  • 1969년 3.1절 기념 50주년을 기념하여 서울시에서 탑골공원 원 정문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정문으로 기증

현지 안내문편집

우리학교 교문의 기둥 4개는 본래 탑골 공원에 세워졌던 대문 기둥이었다. 탑골 공원은 조선시대에 원각사가 있던 자리였는데 조선말기(1897년)에 탑과 대문을 세우고 파고다 공원(현재 탑골 공원)으로 부르게 되었다. 그 뒤 이 공원 안에서 3.1독립선언문이 선포됨으로써 전국적인 독립운동의 발상지가 되기도 하였다.
이 기둥이 우리학교로 옮겨지게 된 것은 1969년 3.1절 50주년을 기념하여 서울특별시가 독립선언기념탑을 세우면서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독립정신을 높여주기 위해 이 기둥 4개를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문기둥으로 기증하였다.
그 후 1975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이 관악캠퍼스로 이전하면서 우리학교 교문 기둥으로 남게 되었다.[2]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서울특별시고시 제2017-38호,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지정 고시》, 서울시보 제3394호, 30-41면, 2017-02-09
  2. 현지 안내문 인용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