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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하는 성을 말한다. 기장읍성은 북쪽의 낮은 산과 남쪽의 평지에 걸쳐 만들어졌다.

성곽의 길이는 약1,000m정도이며, 높이는 4m이다. 평지의 성벽은 바깥과 안쪽 모두 돌로 쌓았으며, 지형이 높은 바깥쪽 성벽은 돌로 쌓았고 안쪽은 흙과 잡석으로 채웠다. 동·서·남문에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한 옹성을 둘렀으며, 동문터 근처에는 적대가 있다. 성 안에는 관장이 집무를 보던 동헌을 비롯하여 향사당, 객사들이 있고, 성 밖에는 망풍정, 망루대가 있었으나 현재는 장관청만 남아있다.

고려 공민왕 5년(1356)에 성을 쌓았으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보수하였다.

현지 안내문편집

이 성은 1356년(공민왕 5)에 축성된 옛 기장현의 읍성이다.[1]

원래 옛 기장 시가지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고 한다. 기장읍성은 고려 무왕 때 교리에 있던 읍성이 왜구의 침입으로 함락되고 관아가 불타버리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현재의 읍성이 있던 곳으로 치소(治所)를 옮겨 울산과 언양 등지의 주민을 동원하여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기장읍성은 둘레가 968m, 높이가 3.6m였으나, 지금은 동문터를 중심으로 둘레가 약 100m, 높이 4m의 성벽이 남아 있다.[1]

성의 형태는 북쪽의 낮은 산과 남쪽의 평지에 축조된 평산성(平山城)이다. 축조수법은 평지에는 석벽의 내외측 모두를 돌로 쌓는 협축(夾築)방식이지만, 지형의 높은 곳은 성벽의 밖은 돌로 쌓고, 내부는 흙으로 채우는 편축(片築)방식으로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동서남북 4대문 가운데 동·서·남문에는 반원형의 옹성(壅城)이 있었으며, 동문터 부근에서 적대(敵臺)가 확인되었다.[1]

성 안에는 관장의 집무처인 동헌을 비롯한 관청 건물이, 성 밖에는 망풍정(望豊亭) 등이 있었으나, 일제시대에 철거·파손되었다. 지금 유일하게 장관청(將官廳) 건물만이 변형된 채 원래 위치에 남아 있다.[1]

각주편집

  1. 현지 안내문 인용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