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버트 테넌트

길버트 테넌트(Gilbert Tennent; 1703년 2월 5일 - 1764년 7월 23일)는 조나단 에드워즈와 나이가 같으며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인 장로교인으로, 윌리엄 테넌트 시니어 목사의 아들이다. 통나무 대학의 최초 졸업생이다.

그의 설교는 조지 휫필드의 설교를 부정적으로 보는 구파를 겨냥하여 장로교회내에 큰 논란을 빚었다. 그로 인해 장로교의 분열이 초래되었다.

1752년 그와 새뮤얼 데이비스는 장로교 뉴욕노회가 프린스턴을 뉴져지 대학(프린스턴 대학교의 전신)의 터로 결정하자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유럽으로 파송되었다. 이 결정은 이미 조지 휫필드에 의해 제시된 것으로 이들 간에 긴밀한 협조 아래 지금의 프린스턴 대학교가 탄생한 것이다.[1]

길버트 테넌트는 순회설교자였는 데, 보스턴에서 논쟁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챨스촌시는 테넌트에 대해 조지 휫필드를 어설프게 흉내낸다고 비아냥 거리기도 했다.[2]

1741년 길버트는 예일대학을 방문하여 설교하였는 데, 휫필드가 시작해 놓은 부흥을 클라이맥스로 끌어올렸다. 그의 방문은 휫필드보다 더 많은 회심자를 내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학문의 계승자인 사무엘 홉킨스는 길버트가 당대에 가장 훌륭한 설교자라고 생각하였다.

주요 발행물 편집

  • 회심하지 못한 자들의 사역의 위험(Danger of an Unconverted Ministry, 1740)

각주 편집

  1. Murray, Iain Hamish. (1994). 《Revival and revivalism : the making and marring of American evangelicalism 1750-1858》. Edinburgh: Banner of Truth Trust. ISBN 0-85151-660-2. 
  2. Marsden, George M., 1939- ((2005 printing)). 《조나단 에드워즈 평전》. 서울시: 부흥과 개혁사. ISBN 89-88614-81-X. 

외부 링크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