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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승(金景承, 일본식 이름: 金城景承, 1915년 ~ 1992년 2월 16일[1])은 대한민국조각가이며 본관설성이고 아호는 표천(瓢泉)이다.

김경승
출생 1915년 7월 18일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개성군
사망 1992년 2월 16일 (76세)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분야 조각
학력 도쿄 미술학교

목차

생애편집

경기도 개성의 지주 집안에서 출생하였다. 서양화가 김인승이 친형이다.

김인승과 김경승 형제는 어릴 때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였다. 먼저 유학한 형을 따라 김경승도 1934년 도쿄 미술학교에 유학했다. 유화과에 다니는 김인승과는 달리 조각과에 입학하였는데, 이 학교의 조각과 학생으로는 최초의 조선인이었다.

김경승은 국회의사당에 있는 이순신장군상과 세종대왕상을 조각했다. 친일미술가가 독립운동가, 민족의 영웅을 조각하는 모순이 생겨났다. 안중근의사기념관 앞에 박정희 전대통령이 쓴 '민족정기의 전당'이란 글씨도 친일미술가 김경승이 조각했다.

1937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였고 1943년에는 추천 작가가 되었다. 추천 작가로서 출품한 작품까지 선전에 총 다섯 점의 인물 조각 작품을 출품하였는데 마지막 작품인 〈제4반〉(1944)이 애국반원인 조선 여성을 묘사하는 등 작품 전부가 일제의 구미에 맞는 시국성을 띠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2] 관변 조직으로 결성된 친일 미술인 단체 조선미술가협회에서 조각부 평의원을 맡기도 했다.[3]

이같은 행적으로 인해 광복 후에는 비슷한 경우로 친일 혐의가 뚜렷하던 김은호 등과 더불어 조선미술건설본부 결성 때 제외되었다. 그의 형 김인승도 같은 이유로 조선미술건설본부에서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1950년대부터 이순신, 안중근, 더글러스 맥아더 등과 현직 대통령인 이승만의 동상을 제작하면서 동상 제작 전문가로서 활동을 재개했다.

5·16 군사정변 이후로는 좀 더 정부와 유착한 행보를 보였다. 수유리의 사월학생혁명기념탑을 건설하여 3·1문화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수많은 동상을 제작했다. 불국사다보탑석가탑을 복원하는 일을 맡기도 했다.

이화여자대학교홍익대학교 교수로,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대한민국 조각계와 미술계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다. 제5공화국 때는 평화통일정책자문위원을 지냈으며, 은관 문화훈장(1982)을 수상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미술 분야에 선정되었다.

주요 작품편집

주요기념동상 대표작으로 〈이충무공동상(부산, 통영)〉, 〈맥아더장군상(인천)〉, 〈밴프리트장군상〉, 〈코울터장군상〉, 〈안중근의사상〉, 〈김성수선생상〉, 〈김활란박사상〉, 〈세종대왕상〉, 〈김구선생상〉, 〈김유신장군상〉이 있으며, 작품으로 〈목동〉, 〈유(流)〉, 〈희망〉, 〈사색〉, 〈평화〉, 〈정(靜)〉 등이 있다.[4]

각주편집

  1. “원로 조각가 김경승씨”. 조선일보. 1992년 2월 17일. 22면면. 
  2. 정운현 (1999년 7월 28일). 〈남산 백범 동상을 바꾸어야 하는 이유 - 미술가 김인승·경승 형제〉. 《나는 황국신민이로소이다》. 서울: 개마고원. ISBN 9788985548465. 
  3. 김경승 《두산백과》
  4. 한국미술/한국미술의 흐름/한국 현대미술/현대의 미술가/김경승, 《글로벌 세계 대백과》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참고자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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