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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호(金觀鎬, 1890년 11월 1일 ~ 1959년 10월 20일)은 일제강점기의 서양화가이다.

평양 출신으로, 1909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미술학교(東京美術學校) 서양화과에 입학, 1915년 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1916년 제10회 문전(文展)에 작품 〈해질녘〉이 특선함으로써 국내 미술계에 대단한 방향을 일으켰다. 귀국 후 1923년 제2회 선전(鮮展)에 작품 〈호수(湖水)〉를 출품했고 그해 평양에서 소성회 미술연구소를 만들어 후진양성에 힘썼다.[1]

고희동(高羲東)과 함께 한국 서양화 개척자로서 쌍벽을 이루었으며, 도쿄 유학생 가운데 3천재의 한 사람이라고까지 극찬을 받은 바 있으나, 귀국 후 얼마 안 되어 작품에 대한 의욕을 잃고 1927년 화단에 완전히 은퇴하였다. 작품 경향은 프랑스 샤반 풍의 인상주의적인 색채가 짙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1] 유홍준은 이를 두고 "김관호는 샤반이라는 화가 이름도 몰랐을 것"이라며 <해질녘>은 구로다 세이키 이래 토착화된 일본 인상파 형식을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2]

각주편집

  1. 한국미술/한국미술의 흐름/한국 근대미술/한국근대의 서양화/김관호, 《글로벌 세계 대백과》
  2.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2 아스카.나라》142쪽

참고 자료편집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의 내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