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주 (광복군)

김국주(金國柱, 본명김관주, 본명 한자: 金關周, 1924년 8월 9일~2021년 5월 26일)는 일제 강점기 조선 시대 말기의 광복군 활동 관련의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군인이었다. 광복회 회장 또한 지낸, 그의 본관수안(遂安)이다.

김국주
신상정보
본명김관주(金關周) → 김국주(金國柱)
출생1924년 8월 9일(1924-08-09)
일제 강점기 조선 함경남도 원산부 교하정 교하동촌 6번지
사망2021년 5월 26일(2021-05-26)(96세)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강동구 국립 서울중앙보훈병원
매장지대한민국 대전광역시 유성구 국립 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6묘역 6-40호
거주지대한민국 경기도 부천시 원미동
국적대한민국
본관수안
직업항일 독립 운동가 겸 군인
학력함남원산보통학교 졸업(1937년 3월)
형제2남 1녀 중 막내
활동 정보
관련 활동독립운동
활동 기간1943년~1946년
주요 활동광복군
경력대한광복군 중사 전역(1945. 08. 22.)
상훈건국포장(1977. 03. 01.)
건국훈장 애국장(1990. 08. 15.)
웹사이트김국주 : 독립유공자 공훈록 - 국가보훈처

1945년 을유해방(8·15 광복)이 도래한 이듬해 1946년에 월남한 그는, 1977년 3월 1일을 기하여 대한민국 건국포장을, 1990년 8월 15일을 기하여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을 각각의 서훈으로 받았다.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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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원산(元山)의 토박이 출신으로, 1924년 8월 9일, 일제강점기 함경남도 원산(元山)에서 김관주(金關周)라는 이름으로 출생하였으며, 1929년(6세 때)에 김국주(金國柱)로 개명(改名)되었다. 한의사(韓醫士)였던 아버지는 만주 지린지린(吉林)에서 한의원(韓醫院)을 운영 및 경영하였다. 1937년 11월에 아버지가 거주하던 만주국 지린 성의 지린(吉林)으로 건너갔으며, 1942년 아버지를 떠나 자신의 친갓집의 각각 친지들이 살고 있는 댁들을 방문코저 국민정부 대륙 본토 시대 중화민국 허베이 성의 톈진(天津)을 거쳐 허난상추 현(商邱縣)으로 갔다가 모든 인사드림을 모두 마치고 나서 만주 지린지린(吉林)으로 돌아오던 중에, 펑톈번시(本溪)의 환런(桓仁)에서 김국주 그는, 전직 조선혁명군에서 활동하였던 장조민(張朝民)을 만났다. 그는 장조민의 인솔을 받으면서, 동시에 이동진(李東鎭)·안경수(安慶洙) 등과 함께 중화민국 국부군 유격대 등의 안내를 받아, 1943년 8월 안후이 성(安徽省)의 푸양(阜陽)에 도착하여 광복군 징모 제6분처에 참여하였다. 결국 그는 광복군 제3지대의 전신인 광복군 초모위원회 제6분처에 참여하여 기간요원으로 활동하였다. 1944년에는 장쑤 성 쉬저우(徐州) 지역에 파견되어 초모공작을 전개하였으며, 장쑤 성의 쉬저우 지역 공작에서 철수한 뒤에는 중화민국군 제10전구산하 간부훈련학교 특설 한국광복군반(일명:한광반 ; 韓光班)에서 훈련을 받았다. 1945년 초에는 안후이 성(安徽省)의 하류(河溜) 지구 연락책임자로 임명되어 동지들의 안내와 지하공작 거점확보를 위하여 노력하였으며, 그후에는 장쑤 성의 상하이 지구에 파견되어 공작 활동을 계속하였다. 1945년 상하이(上海)에서 을유해방(8·15 광복)을 목도하였다. 그 이듬해 1946년 6월에 일가족들과 모두 함께 미군정 시대의 수도 서울을 거쳐 1946년 7월에 경기 부천으로 월남했다.

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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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고자 1977년 3월 1일을 기하여, 건국포장을, 1990년 8월 15일을 기하여, 건국훈장 애국장을 각각 수여하였다.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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