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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한(金大漢, 1947년 2월 8일 ~ 2004년 8월 31일)은 2003년 2월 18일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를 일으킨 대한민국의 방화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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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한
출생 1947년 2월 8일(1947-02-08)
미군정 한국 경상북도 예천군
사망 2004년 8월 31일 (57세)
대한민국 경상남도 진주시 경상남도진주의료원
직업 무직 (범행 이전에는 택시 운전기사, 화물차 운전기사, 행상 등으로 근무하였음)
혐의 살인, 현존전차방화치사
죄값 1심 사형 2심 무기징역
유죄선고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범행동기 심한 우울증과 정신 질환으로 인한 판단력 상실
피해자 수 340
사망자 수 192
부상자 수 148
체포일자 2003년 2월 18일
수감처 진주교도소

목차

생애편집

범행이전까지의 삶편집

김대한은 1947년 2월 8일경상북도 예천군에서 태어났다. 부산광역시 사하구에 잠시 살기도 했으나 범행 이전에는 대구광역시 서구 내당동에 거주했다.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이전까지는 택시 운전기사, 화물차 운전기사, 행상 등으로 약 6년동안 근무했다. 그의 부인은 환경미화원으로 근무했으며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2001년 4월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오른쪽 상반신과 하반신에 장애가 오게 되었고 실어증우울증 증세를 앓게 된다. 2001년 11월 정신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김대한의 범행편집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 53분 12초경(한국 표준시) 김대한은 대곡역에서 안심역 방향으로 운행하던 대구 지하철 1호선 1079호 열차의 첫 번째 칸 경로석에 앉아 있다가 열차가 중앙로역에 진입하기 직전 휘발유 2리터를 나눠 담은 페트병 2개와 라이터를 이용해 불을 질렀다. 당시 주위 승객들이 위험을 감지하고 몸싸움까지 벌이면서 제지하였지만 결국 열차 안에서 불이 붙게 된다. 한편 김대한은 오른쪽 무릎이 불을 붙으게되고 화상을 입었다. 사고 발생 2시간 뒤 대구광역시 북구 노원동3가 조광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던 중 경찰에 체포되었지만 호흡곤란 증세로 경북대 병원에 이송을하고 며칠뒤에 퇴원을 했다.

김대한의 방화 사유는 심한 우울증으로 인해 정신 질환이 심해진 것에 따른 판단력 상실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건 당시 대구 중부경찰서에 출두했던 김대한의 아들은 "아버지가 심한 우울증을 앓았으며 남의 말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등 정신적으로 심한 문제가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의 지병인 뇌졸중으로 인한 울분을 방화로 토한 사건이라는 분석도 있어 방화 사유에 대한 의견은 아직도 분분하다.

김대한의 재판편집

검찰은 2003년 7월 23일에 열린 결심 공판에서 김대한에게 현존전차방화치사죄 등을 적용해 사형을 구형했지만 대구지방법원 제11형사부는 2003년 8월 6일에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범행 당시 심신 장애는 없었으나 범행 당시의 정신 상태 등을 감안하면 온전한 정신 상태에서 일으킨 범행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 피고인이 직접 방화한 1079호 열차에서는 인명피해가 그다지 없었던 점(1080호 열차의 진입으로 사고가 크게 확산됨), 피고인이 사상 초유의 대량 사상자를 내고 온 국민을 경악케 했지만 재판 과정에서 계속 죽고 싶다는 말을 하는 등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해 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김대한의 마지막의 삶편집

2003년 12월 5일 대구고등법원은 피고의 항소를 기각했고 피고인이 상고를 포기하면서 원심이 확정되었다. 2004년 3월 8일 정신 질환 치료를 위해 경상남도 진주교도소로 이감되었다. 2004년 8월 31일 오전 8시 45분경(한국 표준시) 지병인 뇌졸중 악화로 인한 호흡곤란과 의식혼미 증세를 보여 경상남도진주의료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사망했다.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