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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金鐥)경순왕고려에 항복 후 낳은 아들로, 고려 태조 왕건의 외손이다. 고려조에 언양군(彦陽君)에 봉해져 언양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김선
출생?
신라 서라벌
사망977년(?)
고려 거지화현(?)
매장지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송대리(?)
배우자(?)
자녀김진, 김적

그의 이름은 1784년(정조 8) 개성 어느 산기슭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는 《김은열 묘지명》에 경순왕 7자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김은열 묘지명》에 나오는 경순왕의 8자들의 이름은 《고려사》 등의 문헌은 물론이고, 그 어떤 금석문 자료에도 찾아볼 수가 없다. 또 묘지명 형태도 배위 관계 및 생애 등도 누락되어 있고, 단지 형제 서차만 기술되어 있을 뿐 완전하지 않다. 이후 경주 김씨 일문 족보류에 등재되기 시작하였으나, 족보에 옮기는 과정에 내용을 추기(追記) 변조(變造) 하는 등 가필(加筆)을 심하게 하여 현재 이러한 문헌들은 사료(史料)로서의 신빙성(信憑性)에 의심을 받고 있다.

1767년 간행된 언양 김씨 정해보에도 시조가 신호위별장 김수(金壽)로 되어 있으며, 그의 증손 고려(高麗) 병부판사 김취려(就礪)가 거란군의 침입을 격퇴하고 한순, 다지 등의 반란을 평정하는 등의 공을 세워 수태위, 중서시랑평장사, 판병부사에 이르러 언양군(彦陽君)에 봉해져, 사실상 언양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후대에 와서 그를 소원(遡源: 근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감)시켜 시조로 삼았다.

시조 소원편집

1981년 언양 김씨 신유보(辛酉譜)때 후손들이 선계를 '김선(金鐥)-김진(金進)-김정보(金精寶)-김경숙(金鏡淑)-김수(金壽)'로 이어지는 소목을 밝히고, 시조를 경순왕의 아들 김선(金鐥)으로 소원(遡源) 시켰다.

가족관계편집

  • 아버지: 경순왕
  • 어머니: 낙랑공주 왕씨
    • 아들: 김진(金進) 예부시랑
      • 손자:김정보(金精寶) 호부상서
    • 아들:김적(金迪) 공부시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