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운
대한민국의 축구 지도자
김홍운(한국 한자: 金弘運, 1964년 3월 21일 ~ )은 대한민국의 전직 축구 선수출신 축구 감독이다. 현역 시절 포지션은 공격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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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정보 | ||||||
출생일 | 1964년 3월 21일 | (60세)|||||
출생지 | 대한민국 | |||||
키 | 189cm | |||||
포지션 | 은퇴 (과거 공격수) | |||||
대학팀 기록 | ||||||
연도 | 팀 | 출전 | (득점) | |||
1983-1986 | 건국대학교 | |||||
구단 기록* | ||||||
연도 | 구단 | 출전 (득점) | ||||
1987-1991 1991 1992 1993 |
포항제철 아톰즈 유공 코끼리 LG 치타스 현대 호랑이 |
72 (12) 8 (0) 8 (1) 5 (0) | ||||
통산 | 93 | (13) | ||||
지도자 기록 | ||||||
??? ??? |
양정초등학교 농소초등학교 | |||||
* 구단의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정규 리그의 공식 리그 경기 기록만 집계함. 또한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2019년 10월 27일 기준임. |
선수 경력
편집김홍운은 안의중학교 2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했다.[1] 이후 창신고등학교를 겨쳐 건국대학교에 진학했다. 건국대 시절 김홍운은 대학리그에서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4강과 춘계대학축구연맹전 우승을[2] 거머쥐며, 대학 축구계의 태풍의 눈으로 자리매김하고, 이로 인해 건국대 선수들이 대거 국가대표에 발탁되기도 하였다.
김홍운은 1987년 포항제철 아톰즈에 입단하면서 프로 축구 선수로 데뷔했다. 1987시즌 전반기 때 무릎부상 때문에 제대로 뛰지 못했지만[3] 1987년 8월 17일 현대 호랑이전에서 2골을 기록하면서 K리그 첫 득점을 신고했으며 그 이후 9월 21일 현대 호랑이전에서 또다시 2골을[4] 기록했으나 전반기 때 당한 무릎부상의 후유증 탓인지[5] 9골을 기록했다. 이후에는 부상에 시달렸으며 1991년 7월 5일 이석경과의 맞트레이드를 통해[6] 유공 코끼리의 유니폼을 입었다.
그 다음 해인 1992년 4월 20일 유공에서 자유계약선수로 풀린 뒤 LG 치타스로 이적했다.[7] 1992년 10월 14일 열린 유공 코끼리와의 리그컵 경기에서 LG 입단 이후 첫 골을 기록했다.
1993년 5월 현대 호랑이로 이적했다.[8] 현대에서는 5경기에 출전했다.
1993시즌 종료 후 현역에서 은퇴했다.
각주
편집- ↑ “浦項製鐵金(포항제철금)홍운선수”. 매일경제. 1987년 10월 24일. 2020년 10월 26일에 확인함.
- ↑ “浦項製鐵金(포항제철금)홍운선수”. 매일경제. 1987년 10월 24일. 2020년 10월 26일에 확인함.
- ↑ “金弘運(김홍운),金鑄城(김주성)제치고 신인왕후보 부상”. 동아일보. 1987년 9월 22일. 2019년 11월 12일에 확인함.
- ↑ “浦鐵(포철) 2연승 大宇(대우)추격”. 동아일보. 1987년 9월 21일. 2019년 11월 12일에 확인함.
- ↑ “金弘運(김홍운),金鑄城(김주성)제치고 신인왕후보 부상”. 동아일보. 1987년 9월 22일. 2020년 10월 16일에 확인함.
- ↑ 김경무 (1991년 7월 12일). “50경기 마친 프로축구 판도”. 한겨레신문. 2019년 11월 12일에 확인함.
- ↑ “스포츠 短信(단신)”. 경향신문. 1992년 4월 21일. 2019년 11월 12일에 확인함.
- ↑ “현대축구단—김홍운 입단계약”. 한겨레신문. 1993년 5월 21일. 2019년 11월 12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