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오반비엔

까오반비엔(베트남어: Cao Văn Viên / 高文園, 1921년 12월 21일 ~ 2008년 1월 22일)은 라오스 출신 베트남 군인이다. 남베트남에서 1967년 1월에서 1967년 11월까지 국방총장을 지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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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오반비엔
Cao Văn Viên
까오반비엔(오른쪽)
까오반비엔(오른쪽)
생몰 1921년 12월 21일 ~ 2008년 1월 22일
출생지 프랑스령 라오스 비엔티안
종교 불교
복무 프랑스군 (1949년 ~ 1955년)
ㆍ베트남 국가군 (1949년 ~ 1955년)
베트남 공화국 군력 (1955년 ~ 1975년)
복무기간 1940년 ~ 1975년
최종계급 Army-FRA-OF-03.svg 베트남 국가육군 소좌
B ARVN-OF-9.svg 베트남 공화국 육군 대장
주요 참전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베트남 전쟁

그는 1921년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에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으며,[1] 1940년, 호찌민이 베트남 독립 동맹회를 결성하기 위해 민족주의자를 포섭할 때 까오반비엔은 이에 잠시 참여한 적이 있다. 그러나, 8개월간 활동 후 프랑스군에 투항하여 전향을 하였다. 그는 후에 사이공 대학교 언어학부를 졸업한 후 교사로 활동하다가 프랑스가 프랑스 식민군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캡 샹떼자크 군사학교(Cap Saint-Jacques Military School)에 들어가 1949년 졸업 후 프랑스 식민 정부 산하 베트남 국가군의 육군 소위가 되었다.[2]

1955년 동안 프랑스 식민 정부 측에서 베트남 독립동맹회에 대항해 싸웠으나, 프랑스는 패배했다.[3] 이 당시 그의 계급은 괴뢰 베트남국 국가군 육군 소좌였다. 남베트남에 응오딘지엠 정부가 들어서고나서 여러 남베트남 군력 육군 장군의 직책을 거치다가 1963년 즈엉반민의 쿠데타가 일어났는데, 그는 이 쿠데타에 참여하기를 거부했다. 그 후 1965년 작전참모장이 되었으며, 1967년 국방총장으로 임명되었다. 오랫동안 북베트남군에 맞서 싸웠으나, 패배하여 1975년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베트남 전쟁 당시 북베트남의 국방부장인 보응우옌잡에 비해서 매우 무능한 군 지휘자로 평가받는다. 실제로 망명 베트남 거주민 사회에서 무능한 군 지휘 능력으로 베트남 전쟁에서 남베트남이 패배한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군 지휘자라고 종종 비판받았으며, 2008년 미국 애넌데일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4]

각주편집

  1. 《A Soldier Reports》 참조
  2. 《Who's Who In Vietnam》 참조
  3. 까오반비엔 정보1
  4. 《MACSOG Documentation Study》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