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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신촌리 금동관(羅州 新村里 金銅冠)은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 신촌리 9호분(옹관묘)에서 출토한 금동관이다. 1997년 9월 22일 대한민국 국보 제295호로 지정되었다.

나주 신촌리 금동관
(羅州 新村里 金銅冠)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국보
종목 국보 제295호
(1997년 9월 22일 지정)
수량 1식
시대 백제
소유 국유
위치
국립나주박물관 (대한민국)
국립나주박물관
주소 전라남도 나주시 고분로 747
(반남면, 국립나주박물관)
좌표 북위 34° 54′ 53″ 동경 126° 39′ 18″ / 북위 34.91472° 동경 126.65500°  / 34.91472; 126.65500좌표: 북위 34° 54′ 53″ 동경 126° 39′ 18″ / 북위 34.91472° 동경 126.65500°  / 34.91472; 126.65500
정보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목차

개요편집

나주 반남면 신촌리 9호 무덤에서 발견된 높이 25.5cm의 금동관이다. 나주 신촌리 9호 무덤은 1917∼1918년에 일본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이 금동관은 삼국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외관과 내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외관은 나뭇가지 모양의 장식 3개를 머리에 두른 띠 부분인 대륜에 꽂아 세웠으며, 내관은 반원형의 동판 2장을 맞붙여 만들었다. 기본 형태는 신라 금관과 같으나 머리 띠에 꽂은 장식이 신라 관의 ‘山’자 모양이 아닌 복잡한 풀꽃 모양을 하고 있어, 양식상 더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내관인 모자는 전북 익산 입점리(사적 제347호)와 일본에서도 비슷한 것이 출토된 바 있어 백제와 일본과의 문화 교류 관계를 살피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금동관의 주인은 당시 이곳을 지배하던 세력의 최고 지도자였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다만 이 금동관이 현지의 토착 세력에 의해 제작된 것인지 백제로부터 하사받은 것인지에 대하여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특징편집

엷은 동판을 오려 만든 관모로 내관과 외관의 둘로 구성되어 있다. 외관은 폭이 3cm, 길이가 50cm의 동대(銅帶)를 구부려 직경 17cm의 테를 만들고 거기에 세 개의 초화형입식(草花形立飾)을 세웠다. 그 테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칠판화문(七瓣花紋)을 철점(凸点)으로 나타내고 상연(上緣) 가까이 일렬로 하트형 영락(瓔珞)을 달고 있다. 또 세 개의 입식은 중앙 세 기둥의 끝머리와 그 좌우에 세 개의 보주형(寶珠形) 두식(頭飾)이 얹히고 그 아래로 좌우 각 두 개씩의 분지(分枝)가 있는 것이며, 일견 무슨 모란이나 백합꽃을 모아 놓은 것 같고 앞쪽에 하트형 영락을 매달고 있다. 내관은 반원형의 동판을 두 개 맞붙여 이루어지고 있는데 각 면마다 인동문(忍冬文) 테두리 안에 백합꽃 같은 꽃무늬를 철점으로 나타내고 있다. 여러 면에서 신라의 금관과 비슷한 형식을 보이는데 신라의 관보다 약간 고형(古形)이며 왕관으로 추측되기도 하고, 지방 호족(豪族)이 썼던 것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갤러리편집

같이 보기편집

참고자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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