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생면(樂生面)은 경기도 광주군에 있었던 행정 구역이다. 고려말부터 존재해왔던 낙생역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남한산성 주변의 낙성시장에서 지명이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1973년 이후의 성남시 분당구 일대, 분당신도시, 판교에 해당된다.

역사 편집

‘낙생’이란 지명의 제일 오래된 기록은 1460년으로, 광주목에 있는 역참인 낙생역을 언급하고 있다.[1]

1577년에 이 지역은 광주목으로 승격되면서 탄생하였다.

초기의 면청사는 기록을 찾을 수 없다. 한때 정자리 이준구(李浚九) 자택 일부를 면 행정 청사로 쓰기도 했다. 1911년 3월 5일 판교리 191번지에 낙생면사무소 청사를 마련하였다.

1973년 7월 1일 경기도 광주군 성남출장소에서 성남시로 승격되었다. 현재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속해 있다. 낙생면사무소는 판교리에 있었다. 이 면사무소는 낙생출장소를 거쳐 현재의 판교동 주민센터에 이르는데, 그 이유는 과거에 삼평동과 백현동은 법정동이었고 동사무소가 없었고, 현재 판교 지역의 행정복지센터는 백현동 행정복지센터로 통합되었기 때문이다.

행정 구역 편집

1914년의 행정구역[2]과 현재의 행정구역 비교
1914년 현재
구·읍·면 동·리
광주군 낙생면(樂生面) 판교리, 백현리, 하산운리, 석운리, 대장리, 금곡리, 삼평리, 운중리, 궁내리, 동원리, 구미리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 백현동, 하산운동, 석운동, 대장동, 금곡동, 삼평동, 운중동, 궁내동, 동원동, 구미동

역대 면장 편집

  • 1대 남태희(南台熙) 1910년 ~ 1919년 3월 31일, 3.1 만세 운동 직후 태극기를 면사무소에 걸어놓고 사직하였다.[3]
  • 2대 남상직(南相稷) 1919년 4월 1일 ~ 1928년
  • 3대 이갑규(李甲珪) 1928년 ~ 1929년, 돌마면장 전출
  • 4대 민병규(閔丙奎) 1929년 ~ 1930년
  • 5대 민병규(閔丙奎) 1930년 1월 29일 ~ 1931년, 재임명
  • 6대 임두순(任斗淳) 1931년 ~ 1939년
  • 7대 시즈하라 에이다(靑原永豊) 1939년 ~ 1941년
  • 8대 시즈하라 에이다(靑原永豊) 1941년 ~ 1945년, 조선총독부 최후의 낙생면장
  • 1대 이호선(李浩善) 1945년 ~ 1948년
  • 2대 이호선(李浩善) 1948년 ~ 1949년
  • 3대 이호선(李浩善) 1949년 7월 4일 ~ 1952년 4월 30일
  • 4대 임제빈(任堤彬) 1952년 5월 1일 ~ 1953년 6월 9일, 민선 면장
  • 5대 정서영(鄭西永) 1953년 6월 10일 ~ , 민선 면장
  • 이하림 1960년 12월 26일 ~ 1961년 5월, 민선 면장
  • 장영찬 1967년 전후
  • 이병윤(李炳胤) 1969년 ~ 1970년, 초월면장 전출

같이 보기 편집

각주 편집

  1. 세조실록 19권, 세조 6년 2월 5일 임자 4번째기사
  2. (신구대조) 조선 전도부군면리동 명칭 일람 (1917년)
  3. 《자유민보》제12호, 건국4252년 4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