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혜충(南陽慧忠, 675-775)은 중국 당나라의 승려이다. 남종선 6대 조사인 혜능의 제자이다. 당나라 황제 당나라 숙종의 국사이자, 숙종대종의 귀의를 받았다.[1]

남양혜충
출생675년
월주(越州)의 제기현(諸曁縣). 현재 절강성(浙江省) 제기현(諸曁縣).
입적775년
속명염(冉)씨
칭호국사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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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혜충은 16세가 될 때까지 말도 하지 않았고, 사람을 상대하지도 않았다. 그러다 어느 선사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는 예배를 하였다. 부모가 이를 보고 선사에게 아들의 스승이 되어 줄 것을 부탁했지만, 선사는 남종선 6대 조사인 혜능을 추천해주었다.[2]

혜능의 제자가 되어 수행하고 인가를 받은 후, 남양(南陽) 백애산(白崖山)의 당자곡에 머물려 40년 동안 교화를 하였다. 상원(上元) 2년 정월 16일에 당나라 황제 숙종이 불러, 장안(長安)의 천복사(千福寺) 서선원(西禪院)에 머물렀다. 후에, 광택사(光宅寺)로 돌아갔다. 숙종과 대종이 남양혜충으로부터 보살계를 받고, 국사(國師)의 예를 내렸다.[3]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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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황제)가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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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능이 남양혜충을 보고는 성스럽고 밝아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도 천자가 되어 60년을 다스릴 것이니, 불법을 위하라고 말했다. 이에 남양혜충은 60년이 아니라, 100년의 천자도 원하지 않으니 출가를 허락해 달라고 했다. 혜능은 남양혜충이 천하에 홀로 선 부처가 되리라고 하며 출가를 허락했다.[4]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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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 진무 (2022년 11월 25일). “[김진무의 중국불교의 고승들] 23. 동산법문 계통 남종선 최초 ‘無情佛性’ 제창”. 《현대불교》. 현대불교신문사. 2023년 9월 24일에 확인함. 당시 황제인 숙종(肅宗)으로부터 국사(國師)로 초빙된 선사가 바로 남양 혜충(南陽慧忠, ?~775)이다. 혜충 국사는 숙종과 대종(代宗)의 두 황제로부터 귀의를 받았으며, 
  2. 김, 진무 (2022년 11월 25일). “[김진무의 중국불교의 고승들] 23. 동산법문 계통 남종선 최초 ‘無情佛性’ 제창”. 《현대불교》. 현대불교신문사. 2023년 9월 24일에 확인함. 어려서 16세에 이르도록 말도 하지 않았고, 사람도 상대하지 않다가 어떤 선사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갑자기 달려가 예배하였다고 한다. 이에 부모는 선사에게 제자로 삼아줄 것을 청하였지만, 그 선사는 조계산(曹溪山)에 주석하는 혜능 선사를 추천하였다고 한다. 
  3. 김, 진무 (2022년 11월 25일). “[김진무의 중국불교의 고승들] 23. 동산법문 계통 남종선 최초 ‘無情佛性’ 제창”. 《현대불교》. 현대불교신문사. 2023년 9월 24일에 확인함. 혜충은 혜능의 문하에서 깨달음을 인가(印可)받고, 남양(南陽) 백애산(白崖山)의 당자곡(黨子谷: 현 河南省 淅川縣 倉房鎭)에 들어가 40년간 주석하며 교화하였다고 한다. 이후 “상원(上元) 2년 정월 16일에 숙종 황제의 부름을 받아 장안(長安)의 천복사(千福寺) 서선원(西禪院)에 안치(安置)되었고, 후에 광택사(光宅寺)로 돌아갔다. 숙종과 대종의 앞뒤 양조(兩朝)에서 친히 보살계를 받고, 국사(國師)의 예를 내렸다.”라고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다. 
  4. 김, 진무 (2022년 11월 25일). “[김진무의 중국불교의 고승들] 23. 동산법문 계통 남종선 최초 ‘無情佛性’ 제창”. 《현대불교》. 현대불교신문사. 2023년 9월 24일에 확인함. 그로부터 바로 조계산으로 가서 혜능을 만나 출가를 원하자 혜능은 혜충에게 “너는 성스럽고 밝아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도 육십 년 동안 천자(天子)가 될 것이니, 천자가 되어 불법(佛法)을 위하는 군주가 되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거절하지만, 혜충은 “육십 년뿐만 아니라 백 년의 천자라도 원치 않으니, 오직 스승께서 자비로 저의 출가를 허용하십시오.”라고 하자 “네가 출가하면, 천하에 홀로 선 부처가 되리라.”라고 하며 출가를 허용하였다고 한다. 이로부터 후대에 많은 선전(禪典)에서 황제의 지위도 마다하고 출가한 사례로 인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