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 홍씨

남양 홍씨(南陽 洪氏)는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487,488명으로 조사되었다.

역사편집

남양 홍씨는 고려 개국공신이며 삼중대광태사(三重大匡太師)를 지낸 홍은열(洪殷悅)을 중시조로 하는 남양 홍씨 당홍계(南陽 洪氏 唐洪系)와 고려 때 금오위 별장동정을 지낸 홍선행(洪先幸)을 시조로 하는 남양 홍씨 토홍계(南陽 洪氏 土洪系)의 두 계통으로 나뉜다. 두 계통은 서로 조상이 같다는 설이 있으나 선계를 고증할 수 없어 당홍과 토홍으로 구분하고 있다.

남양 홍씨 당홍계편집

남양 홍씨 당홍계(南陽 洪氏 唐洪系) 시조 홍천하(洪天河)가 당나라 8학사의 일원으로 영류왕 때 고구려에 들어와 유학을 가르치다가 연개소문의 난이 일어나자 신라로 피신하였고, 선덕여왕 재위시 유학 발전에 공을 세워 당성백(唐城伯)에 봉해졌으며, 신무왕 때는 태자태사(太子太師)로 추대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선계를 고증할 수 없어 고려 개국공신으로 삼중대광태사(三重大匡太師)를 지낸 홍은열(洪殷悅)을 1세조로 한다. 당홍은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293명, 상신(相臣) 8명, 문형 2명, 청백리 3명, 왕비 1명, 부마 4명을 배출하였다.

남양 홍씨 토홍계편집

남양 홍씨 토홍계(南陽 洪氏 土洪系) 시조 홍선행(洪先幸)은 당성에 대대로 세거한 토착 사족으로서 고려 금오위(金吾衛) 별장동정(別將同正)을 지냈다. 토홍은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42명, 상신 2명, 대제학 1명, 청백리 3명, 부마 1명, 공신 3명을 배출하였다. 12세 홍언필(洪彦弼)이 중종 때 영의정을 지내고, 홍언필의 아들 홍섬(洪暹)도 선조 때 영의정을 지냈다.

본관편집

남양(南陽)은 경기도 화성시(華城市) 남양읍 일대의 지명이다. 본래 고구려의 당성현(唐城縣)이다. 신라가 757년(경덕왕 16)에 당은군(唐恩郡)으로 고쳤고, 822년(헌덕왕 14)에 수성군(水城郡)에 병합되었으나 829년(흥덕왕 4)에 당성진을 설치하면서 분리되었다. 고려가 옛 지명으로 복구하여 940년(태조 23)에 당성군이 되었다가, 1018년(현종 9)에 수주(水州)의 관할에 들었고, 후에 인주(仁州)의 영현이 되었다. 1172년(명종 2) 독립하여 감무를 두었다. 1290년(충렬왕 16)에 홍다구(洪茶丘)가 원나라의 정동행성 우승(征東行省右丞)이 되었으므로 지익주사(知益州事)로 승격되었다가 강녕도호부(江寧都護府)로 승격되었고, 다시 익주목(益州牧)으로 승격되었다. 1310년(충선왕 2)에 남양부으로 강등되었다. 1413년(태종 13)에 남양도호부가 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경기도 남양도호부의 토성(土姓)으로 홍(洪)·송(宋)·(房)·박(朴)·최(崔)·(徐) 6성이 기록되어 있다.[1]

1896년에 경기도 남양군이 되었다. 1914년 수원군에 병합되었다가 1949년 수원시가 분리되면서 화성군으로 개칭되었다. 2001년 화성시로 승격되었고, 시청 소재지는 남양읍이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